뉴스 발행인 에세이 l 삶과 죽음의 간극은 찰나이다

발행인 에세이 l 삶과 죽음의 간극은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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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삶과 죽음은 찰나의 간극이다.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러나 준비된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으로 맞이할 수 있다”

며칠 전, 황망한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발신 번호가 고인의 것이어서 부모나 가족의 소식인가 싶었는데, 믿기 어렵게도 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여 전 모임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는 후배였다. 일 년에 한두 번 친목단체에서 마주치는 사이였지만, 화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를 아끼고 있었다. 급히 단체 톡과 밴드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회장과 총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족들이 연락처를 몰라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로만 소식을 전하다 보니, 내게만 전달된 듯했다. 나는 회장에게 알리고 밴드에 공지했다. 총무에게도 연락이 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회원들은 사망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병열 언론학박사 /수필가

비슷한 경험은 몇 달 전에도 있었다. 봉사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분이었는데, 그 역시 본인의 번호로 사망 소식을 내게 보냈다. 급히 집행부에 알렸고, 회원들에게 공지가 전달됐다. 일반 회원들은 고인과 내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여겼지만,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회원 중 내 번호를 저장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가족들이 고인의 활동 영역을 잘 알지 못하면, 등록된 전화번호 외에는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평소 자주 연락하지 않는 사이였다면 사망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타지에 살던 외당숙이 세상을 떠났지만, 자녀들이 연락처를 몰라 부고를 전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려온다.

예전에는 부고를 접하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부고를 받을 때마다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간극이 찰나임을 실감하며,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두려워진다. 죽음 자체보다도 사후 처리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인간의 섭리임을 알기에 죽음에 초연하려 노력하지만, 그 과정과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문제는 예고 없는 죽음이다. 유족들의 슬픔은 차치하더라도, 사후 절차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황한 유족들이 부고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사망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평소 연락이 드물었던 지인이라면 사망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뒤늦게 알게 되는 황망한 일도 생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집안끼리 연락을 주고받는 소통 창구가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었지만, 현대에는 핵가족화로 인해 집안 간의 연락이 끊기거나 소통이 단절된 경우가 많다. 경조사를 함께 나누는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혈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조사조차 개인적으로 치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죽음이 점점 더 외롭고 두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고독사가 증가하는 이유는 친인척이 없어서가 아니라, 혈연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할 때 죽음을 대비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죽음이 닥치더라도 유족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유산 문제는 물론, 남기고 싶은 이야기나 부고를 전할 지인의 연락처까지도 정리해 두자. 유언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후 문제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도록 평소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장이나 휴대폰 비밀번호도 공유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

삶과 죽음은 찰나의 간극이다.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러나 준비된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으로 맞이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준비의 시간이며, 그 준비는 곧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가는 길이다. 죽음을 대비하는 일은 결국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마지막 책임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삶을 정돈하는 것이 내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