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도시이자 조선의 시간을 품은 이곳이 요즘엔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또 다른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와 예술, 그리고 케이팝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지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그 중심 무대처럼 다시금 종로를 비추고 있다. 조선의 궁궐에서 골목의 찻집까지, 종로의 길을 걷는 일은 곧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거니는 일이다.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

고궁의 그림자 속, 새로운 영웅의 무대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경으로, 케이팝 걸그룹이 초자연적 존재들과 싸우며 세상을 지켜낸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 상상 속의 무대가 현실 속 어디에 존재한다면, 그곳은 단연 종로일 것이다. 종로 여행의 출발점은 단연 경복궁이다. 1395년, 조선 왕조의 첫 궁궐로 세워진 경복궁은 조선의 정치·문화 중심지였다. 근정전 앞마당에 서면, 격조 높은 건축미와 정연한 배치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근처 국립고궁박물관과 민속박물관에서 왕실 문화의 섬세한 흔적을 마주할 수도 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창덕궁이 기다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궁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비밀의 정원, ‘후원’으로 유명하다. 경복궁이 장엄하다면, 창덕궁은 고요하다. 왕의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옛 왕조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인사동과 익선동, K-컬처가 숨 쉬는 골목
궁궐을 벗어나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면 전통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도자기, 한지, 붓과 먹이 진열된 공예품 상점들, 오래된 찻집의 향긋한 차 향, 골목마다 이어진 화랑과 카페는 ‘한국적인 멋’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최근 종로의 골목은 케이팝 팬들에게도 인기 있는 ‘성지’가 되었다. 익선동의 한옥 카페에서는 BTS나 블랙핑크를 테마로 한 포토전과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인사동 거리에는 한복을 입고 아이돌 뮤직비디오 배경처럼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한옥과 네온사인이 공존하는 풍경, 바로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보여준 미래형 서울의 현실 버전이다. 전통의 골목이 케이팝의 비주얼과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국 문화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과도 같다.

낙산공원 성곽길에서 만나는 ‘케이팝 데몬헌터스’
낙산공원은 서울의 동쪽을 지키는 성곽의 요새이자, 오늘날엔 젊음과 예술, 그리고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문화의 언덕이다. 이곳은 조선의 역사가 깃든 장소이면서, 영화 ‘케이팝 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상상한 서울의 환상 세계와 가장 가까운 현실 무대이기도 하다. 낙산은 해발 125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은 압도적이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돌벽 위로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아래에는 현대 서울의 불빛이 파도처럼 번진다. 낮에는 고즈넉한 역사 산책길이지만, 밤이 되면 마치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듯한 분위기로 변한다. 이 풍경은 ‘케데헌’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의 유적지와 네온 조명이 공존하고, 고대의 영혼과 케이팝의 리듬이 충돌하는 세계. 그 상상의 서울이 바로 낙산의 풍경 속에 살아 있다. 옛 성곽 위로 비치는 조명, 그리고 도시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잔향, 이곳은 마치 영화의 또 다른 촬영 세트장 같다.

세운상가와 청계천, 서울의 스팀펑크 무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관 속엔 기술과 마법이 공존한다. 그 상징적인 배경을 현실에서 찾는다면 세운상가 일대가 딱 맞다. 오래된 전자부품 가게와 최신 로봇 스타트업이 공존하는 이곳은, 마치 서울판 ‘사이버 종로’다. 청계천의 불빛이 반사되는 밤거리를 따라 걸으면, 현실과 가상이 겹치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등장할 것만 같은 장면, 그 배경은 이미 종로에 존재한다.

광장시장과 종묘, 삶과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
종로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광장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빈대떡, 육회, 마약김밥 등 한국 전통 시장의 맛이 모두 모여 있는 곳. 시장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흥겨운 소리와 냄비 위에서 부글거리는 기름 냄새는 종로만의 활력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시간은 종묘에서 완성된다. 조선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는 한국 정신문화의 근간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매년 열리는 ‘종묘제례’는 600년을 이어온 의식으로,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

종로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K-트래블
오늘의 종로는 단순한 역사 여행지가 아니다. 전통공예 체험, 케이팝 관련 전시, 한옥 스테이,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공연까지—이 모든 것이 케이팝 팬들에게는 ‘성지 순례’이자 ‘영감의 도시’다. 경복궁에서의 고궁 야간음악회, 북촌한옥에서 열리는 케이팝 커버 영상 촬영, 청계천 루프탑에서 펼쳐지는 버스킹 무대까지, 종로는 이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상상력을 현실로 옮겨놓은 살아 있는 무대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숨 쉬는 도시, 그것이 바로 종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