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열 에세이 -전병열의 작은 행복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요, 곧 희망을 버리는 거와 같다. 다만 과욕을 버리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은 개인적으로 고비가 반전되는 날로 여겨왔다. 1년 동안 겪은 어려움들이 이날을 기해 모두 극복되고 새날이 시작되는 마음가짐을 갖는 날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으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한다. 이날만 지나면 모든 고난이 사라질 것으로 믿고 또 그렇게 소망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면 어지간한 문제는 이날을 기해 모두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이날이 지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얽혔던 난제도 해결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바뀌고 조건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긍정의 힘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나만이 느끼는 신념의 힘일 수도 있다. 지난해는 유난히 힘든 과정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이나 직장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는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예년 같으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연등이 가득 달렸지만, 듬성듬성 빈 등이 보인다. 코로나 거리두기 방역 지침을 준수하고자 법당을 나와 한적한 자리를 잡았다.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날은 산사음악회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는데, 올해는 어르신 몇 분만 의자에서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주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을 뿐 고요하다. 코로나19가 종교의 벽을 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종교 집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결국 인간의 능력으로 퇴치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백신이 빨리 공급돼 이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마음을 비우고 평온한 순간을 받아들인다.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본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동바동 거리는가.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가. 나의 한계는 어디인가. 어떤 모습을 남길 것인가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이지만, 정답이 없다. 부처님도,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갈 길을 알려 주지 않는다. 해답을 구하고자 상념에 상념이 꼬리를 문다.
마음을 비우고 있는 이 순간이 최고의 행복이다. 이런 마음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문득 법정 스님의 글들이 소환된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이 순간만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면 행복은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의 주옥같은 글에 녹아 있는 사연들은 마음을 비워야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속세의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없는 보통 사람은 일생을 고민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 속에는 약자의 변명이 들어 있다고 항변한다. 더 이상 성취할 수 없으면 탐욕을 버리든지, 줄이든지 할 것이다. 굳이 마음을 비우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 왔다. 인간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한다. 욕구가 없으면 희망이 없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욕심이 있다는 것과 같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자신을 위해서 희망을 가진다. 하기 좋은 말로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버려라’ 라고들 말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요, 곧 희망을 버리는 거와 같다. 다만 과욕을 버리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본인의 역량에 맞는 욕심을 부리자는 것이다. 올해는 이를 실천해 볼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 다짐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