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20년 만에 벌어진 의사들의 집단파업이 지난 4일 사실상 종료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여당과 갈등의 핵심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등 ‘4대 의료 정책’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일단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진료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지만, 국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강행한 의료계와 정부의 미숙한 정책은 지탄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실 금번에 논란이 되는 정책은 사전에 의료계와 협의 및 설득을 통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야 할 사안이었지만,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사태로 위급한 상황에서 공청회도 없이 밀어붙였다. 그동안 ‘하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런 정책을 추진해 분란을 자초하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게다가 공공의대 학생 모집 시 추천자에 시민단체를 포함한다는 발상 등으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을 야기하면서 공분을 샀다. 심지어 공공의대 설립 시 총장은 대통령이, 이사는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는 법안까지 여당에서 발의됐다는 소식에 친정권 성향 의료·교육계 인사들이 이권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첨예한 문제를 국민적 합의 없이 혼란을 틈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은 결국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전공의·전임의·개업의 등 의사들도 코로나19 사태로 의료 인력이 절실할 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단체 행동을 강행한 데 대해서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물론 정부 정책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하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지만, 고통받는 환자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집단 파업은 의사의 사회적 책무를 내팽개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언론도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갈등을 부추기듯 논쟁을 계속해 왔다. 당리당략적인 주장과 모순적 프레임으로 국민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혼란만 가중하는 행태를 고수했다. 심지어 가짜뉴스 등으로 진영 갈등을 부추기며 어부지리를 노리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의료 개혁과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국가적·시대적 과제가 추진 동력을 상실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사항은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하고, ‘코로나19 안정 이후에 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처음부터 논의’한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적 논의들이 그 이전으로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합의문에 명시된 ‘코로나 안정화’라는 개념은 현 상황으로 볼 때 불확실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2022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던 의대 정원 확충은 사실상 지연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의료 불평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 의사의 52.1%가 수도권에 주재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들 뿐만 아니라 지역 간에도 의료 격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의료수가 등 시스템을 개선토록 해야 하며, 지역 공공병원과 공공의사 확충도 이뤄져야 한다. 필요한 도서 지역 등에는 비대면 원격 진료도 도입해야 한다. 이번 전공의 파업으로 지역 간 의료 격차와 진료과별로 의료 인력 수급의 불균형 등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이 모두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합의로 공공의료 확충의 당위성과 의료체계를 혁신하는 작업이 무력화되지 않기 바란다.
공공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중대한 국가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문제를 도출하고 그에 따라 대안을 마련했지만, 의료계 반발로 매번 발목이 잡혔었다, 이번 정부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시발점으로 되돌아간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소통과 설득의 노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은 대의명분이 명확해도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앞으로 주도면밀하고도 합리적인 공공의료 정책 수립으로 이익집단과 소통하고, 오로지 기본권인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차제에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특별 법안 등을 입법화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전병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