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각국 하늘길이 막히면서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14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0년 5월 해외관광객이 3.7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8% 감소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올해 3월부터 연달아 부진이 이어진 셈이다.
출국심사와 입국수속으로 긴 행렬이 늘어섰던 공항의 풍경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휑하기만 하다. 코로나19 사태 6개월, ‘언택트’가 일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전 세계 여행산업은 신음하고 있고, 자칫 관광 산업 기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여행업계 성적 참혹
국내 여행업계 양대산맥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매출은 반토막 났다. 하나투어 1분기 영업손실은 275억만원으로, 창사이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모두투어의 영업손실은 1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 대비 100억원 이상 줄어든 수치다. 올해 1분기의 경우 롯데관광개발이 76억원의 적자를 냈고 레드캡투어(71억원), 세중(11억원) 등의 여행사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흑자폭이 줄었다. 롯데관광개발 등 다른 여행사들도 2분기에는 실적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일제히 주3일제, 유급휴직 등 비상 경영 대책을 가동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되지 않아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지난 5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무급휴직을 실행한 하나투어는 최근 3개월 더 연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나투어의 자회사인 SM면세점도 실적이 급감해 인천공항 내 면세점 영업을 정지한다고 공시했다.
정부의 특별고용지원금도 수급기간이 6개월이라 대다수 업체는 9월이면 지원금이 끊겨 막막한 실정이다. 특히 저가 항공사들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1만 7천여 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지원이 끊기면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업계는 지원 연장을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여전히 불가능한가
지난 4월 해외여행을 가려는 출국자는 3만1천425명으로 지난해 동월(224만6천417명)보다 98.6% 급감했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2만9천415명으로 98.2% 줄었다. 휴가철이 가까워져도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명동과 부산 남포동 등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던 관광지에서조차 관광객을 보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관광 부진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추세지만 휴가철을 맞아 슬슬 빗장을 풀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허용하는 방침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2일 외교부 해외안전여행정보 공지에 따르면, 유럽에서 한국인의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체코 ▷터키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등 20개국이다.
낮은 수위의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는 나라는 ▷그리스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등 9개국으로, 사전등록 및 문답대응, 자부담PCR검사, 출입국사실증명서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인 일반인이 여행 목적으로 가기 어려운 나라는 165개국이고, 저강도 검역 및 입국절차를 밟는 10여 개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 150여개 국가는 외교관, 근로자, 유학생, 보건의료인 등이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 국내에서 14일동안 격리조치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중 해외 입국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8월 2일 기준 신규 확진자 수는 사흘째 30명 대고, 이중 해외유입이 22명으로 국내 발생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외교부가 여전히 해외여행 경보를 발령중인 이유다.
호황 누리는 국내여행업계
모든 관광업계가 쓴 고배를 마시고 있을까? 단언컨대 ‘모든’은 아니다. 종합여행사가 생존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국내 여행에 주력하고 있는 여행업체는 이용자가 밀려들고 있는 수준이다.
지난달 22일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야놀자의 6월 순이용자는 167만명으로 지난 3월 이후 무려 70만명 가량 급증, 전년동기와 비교해도 오히려 10만명 가량 이용자가 증가했다. 야놀자의 경쟁자인 여기어때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여기어때의 순이용자는 142만명으로 올 3월 대비 60만명 가량 늘었다. 전년동기대비로는 20만명 가량 급증했다. 코로나19 위기가 되려 기회가 된 셈이다.
여행 트렌드가 국내 여행으로 좁혀지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지자체와 손잡고 5성급 호텔을 파격 할인가로 제공하는 등 지역별 특가상품은 물론 5만원 상당의 카드사별 할인쿠폰까지 내놓는 등 플랜이 다양하다.
포스트 코로나 관광 흐름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자중하는 분위기 속에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관광업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테마리조트와 로봇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을 운영중인 일본의 HIS그룹은 해외출장을 대행하는 서비스인 ‘렌탈HIS’을 선보였다. 코로나19로 각국간 이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진행해야만 하는 안건이나 업무가 있으며, 이들 중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업의 요구에 대응하는 서비스다. 70개국 163개 도시, 271 지사를 거점으로 기업의 직원이 해외 현지에서 할 예정인 업무를 HIS 해외 거점 직원이 대행하거나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외 구매 및 매매, 조사보고서, 업무제휴 및 협력, 상담지원 등 다양한 의뢰를 소화하고 있다.
해외여행이 전과 같이 활성화 되려면 백신이 상용화 되는 시기가 와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적어도 내년 후반,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외여행이 재개되더라도 여행트렌드가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한다. 가성비와 가심비로만 구성되던 과거와 달리 어떤 국가가 방역이 잘 되는지, 동양인 혐오 범죄는 일어나지 않는지 등이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위험부담의 전가로 여행비용이 과거에 비해 상승할 수도 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닌, 비교적 여유 있는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여행 산업과 시장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