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숙박업소 안전 미비 심각성 드러나
안전 점검 강화 및 안전 가이드라인 구축 시급
인터넷 포탈 실시간 검색어에 연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강릉 펜션 사건’은 지난 18일 오후 1시 12분께 강원 강릉시 경포의 한 펜션에서 수능을 끝낸 남학생 10명이 단체 숙박 중 의식을 잃은 사건이다. 소방당국은 펜션 투숙객 가운데 3명이 숨지고 7명은 의식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거품을 물고 구토 중인 채로 발견됐다고 소방 당국은 밝혔다. 투숙객들은 최근 수능시험을 끝낸 남학생들로 보호자 동의로 단체 숙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 펜션 사건의 원인은 보일러 일산화탄소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되었고,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확인됐다. 강릉 펜션 사고와 관련해 현장 감식에 나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가스안전공사 등과 합동으로 시행한 1차 현장 감식에서 보일러와 배기구인 연통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어긋난 사이로 다량의 연기가 새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사고 현장 감식 과정에서 1.5m 높이 가스보일러와 배기구인 연통 부위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채 어긋나 있었던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잇단 가스 사고의 대응과 관련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정부가 야영시설에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펜션은 대상에서 빠져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지적이 높다.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의 기체이기 때문에 노출돼도 쉽게 알 수 없고, 보일러 연료나 연탄이 탈 때 많이 나오며 마시게 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벌어진 가스 사고는 해마다 120여 건 수준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은 일산화탄소를 치명적인 유독가스로 평가해 2010년부터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정부가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야영시설에 설치하도록 관련 법규를 만들었지만, 펜션과 주택은 대상에서 빠졌다.
수능시험을 마친 서울 대성고 학생 10명이 참변을 당한 강릉 펜션은 농어촌 민박으로 특정소방대상물에 포함돼 있지 않아 안전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농어촌 민박은 농어촌정비법에 저촉을 받아 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 담당 시설인데, 1995년 농어촌 관광 활성화와 주민 소득증대를 위해 시행한 제도이다. 허가제인 일반 숙박업과 달리 신고제로 운영된다. 전체면적 230㎡ 미만 주택에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만 설치한 뒤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다. 농어민 자신이 사는 주택에서 민박업을 할 수 있고 다른 숙박시설보다 토지 이용이 자유로운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방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서는 제외돼 있다.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되면 안전기준에 따라 방화벽 등 연소시설을 설치하고 유지관리 해야 한다. 모텔, 호텔, 여관 등 일반숙박시설과 관광호텔, 콘도 등 관광숙박시설은 특정소방대상물에 포함된다. 농어촌 민박은 건축법상 주택으로 분류돼 소방 안전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보건소와 농어촌 담당 부서 등 지자체로부터 상하반기 화재위험 여부나 피난시설 여부 등 정기점검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는 불법 증축과 무단 용도변경을 하는가 하면 실거주 요건도 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이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전국 농어촌 민박 2만여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5천 700여 건의 불법행위가 적발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이번 시설에 대해 불법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강릉 사고 펜션은 아직 뚜렷한 불법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강릉 펜션은 올해 7월 24일 신고됐기 때문에 하반기인 내년 2월 25일까지 점검 대상이며 정부는 이번에 검사 기간을 한 달 당겨서 전수 조사를 할 계획이다. 또 과거에는 주로 위생 등을 검사했고 난방은 건축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점검 항목에 없었다. 펜션은 농어촌 민박이기 때문에 통상 위생 등 숙박업소 일반에 대한 것만 점검한다 농어촌 민박의 보일러 부분은 점검 대상이 아니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 전수 조사 당시 강원도 도내 민박에서는 813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이는 1천 225건의 위반사항이 발견된 경남에 이어 전국 두 번째 규모다. 유형별로는 전체면적 초과 374건으로 가장 많았고, 실거주 위반 173건, 미신고 숙박영업 172건, 무단용도변경 94건 순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는 농어촌 민박 불법행위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민박신고·운영·점검사항에 관한 전산시스템 구축을 올 연말까지 완료하고, 농어촌 민박을 확인할 수 있는 로고 표시를 의무화하기 위해 농어촌정비법을 개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현장조사를 통해 시설 운영상황과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하고 위법행위가 있을 경우 필요한 조처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어촌 민박에 대해 전국적으로 전수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숙박업소들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되고 있다.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강화와 옹진에서 1천여 곳이 넘는 숙박업소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를 점검할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식이다. 강화군과 옹진군에는 각각 630여 곳과 579곳의 농어촌 민박이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 업소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1명씩뿐이라 한다. 이정도 인원이라면 안전 진단은커녕 사고가 발생해도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단 1명의 직원으로는 신고나 폐업 등 서류업무를 담당하기도 벅찬 실정이라는 것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들판을 태운다. 여타 부분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화재의 취약점이 상존하는 한 안전은 보장 없다. 이 같은 실태는 유독 강화와 옹진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 각지의 숙박업소 대다수가 안전관리에 취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속한 시설 점검과 함께 철저한 안전조치가 뒤따라야 하겠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누차 강조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후약방문이다.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재난 사고들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민들 모두 안전의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다. 크고 작은 화재를 비롯해 안전사고가 유난히 빈발했던 올해 한 해였다. 새해에는 안전사고 없는 사회가 되도록 시민 모두가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성보빈 기자 bbs@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