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 에세이 l 명절에 되새겨 보는 전통 제례 문화

전병열 에세이 l 명절에 되새겨 보는 전통 제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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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인 안정을 안겨주는 고향이며, 자신의 생존 근거와 삶의 지향점을 다잡을 수 있는 곳이 조상의 산소다.

전병열 언론학 박사 / 수필가

나이를 더하면서 명절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웃음꽃을 피우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점차 핵가족화하면서 명절 대가족 모임을 부러워하기는커녕 꺼리는 분위기를 느낄 때는 서글퍼지기도 한다. 아직도 명절 때는 온 친척이 모여 북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당신은 앉아서 대접만 받으면 되지만, 준비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잖아요.” 그 말에 일부 공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서운함이 자리한다. 소위 ‘꼰대’ 의식이 남아있어서일까. 부엌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손수 장만할 수 없다 보니 아내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제대로 하는 음식이란 기껏 라면이나 김치찌개 정도다 보니 대꾸할 말이 없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부엌에 얼쩡거리다 야단을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부엌이 낯설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가족이다 보니 명절을 지내고 나면 몸살을 앓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뭔가 거들어 주고 싶어도 내가 할 일이 없다. 오히려 일에 지장을 준다며 핀잔만 듣기 일쑤다. 대가족의 장남 며느리로서 수십 년간을 제사와 명절을 치렀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인고의 세월을 지켜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가 점차 시대의 변화를 느끼면서 부담스러운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분위기에 휩싸여 기제사 참석 인원이 줄고 급기야 명절 제사마저도 묘제로 바꿔 고향 선산에서 모시게 됐다. 코로나 엔딩 이후에도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도의적 의무는 약화하고, 형제자매들도 가정을 가지면서 각자 명절을 지내다 보니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이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게 됐다. 이제는 소싯적 이야기로 추억에 담고 지낼 뿐 기대마저도 사라져 간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해야 하는데 올해는 추석 전 연휴가 길어 그때 하고자 미루게 됐다. 명절 제사를 산소에서 모시다 보니 연휴 때 미리 가서 하면 될 것 같아서다. 예전에는 집안 친척들이 함께 벌초하고 우애를 다지는 시간도 가졌었다, 그러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가족들끼리 자신들의 조상만 벌초하게 되면서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편리한 시간에 자유롭게 빨리 마칠 수 있어 좋아했다. 집안 전체가 모여 특정한 날은 정해서 하다 보면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이웃 대가족 집안의 벌초 정경을 보면서 부럽게 생각되는 건 아이러니일까.

산소만 벌초하면 덜 힘들겠지만, 주변 농장까지 한꺼번에 해야 하는 처지라 벌초하는 날이 점점 힘겹게 다가온다. 아들이 돕겠다고 나서지만, 아직도 어설프게 생각돼 맡기지를 못한다. 아내는 “이젠 자식들 몫이니까 넘겨주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고집스럽게 도맡아 하고 있다. 예초기를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는 자식의 안전을 우려하는 아버지의 노파심 때문이다. 장성한 아들인데도 농사일을 맡기지 않고 당신 손수 고달픔을 안고 사셨던 아버지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긴 장마로 허리까지 자란 잡초 속에 봉분까지도 묻혀버릴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평소 산소 관리를 제대로 했다면, 잡초의 침범을 잡았을 텐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벌초도 우리 세대가 끝이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벌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고 가문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산소를 찾는다. 또한, 정서적인 안정을 안겨주는 고향이며, 자신의 생존 근거와 삶의 지향점을 다잡을 수 있는 곳이 조상의 산소다.

선조의 지혜로 물려준 전통 제례 문화를 힘들고 어렵다고 귀찮게 여겨서 되겠는가. 시대가 변해도 옛것을 지키려는 것을 현대적 의미로 이해타산적인 평가를 할 수는 없다.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 정서적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가문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고유의 전통문화를 준수하는 가정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여론에 매몰돼 우리 민족 고유의 제례 문화를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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