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가짜뉴스 규제, 실정법만으로 가능하다

[전병열 칼럼] 가짜뉴스 규제, 실정법만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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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와 진짜의 판별은 정권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공정한 시민기구를 설치해 투명한 절차와 논의를 거치게 해야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가짜뉴스(Fake News)’ 문제는 디지털 문화가 초래한 시대적 논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개인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진짜 뉴스처럼 퍼뜨리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가짜뉴스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가짜뉴스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여론을 호도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가짜뉴스를 퇴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좀 더 강력한 가짜뉴스 대책을 주문하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하는 양상까지 벌어졌다. 이 총리는 지난 2일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면서 관계 부처에 “가짜뉴스 제작자뿐 아니라 유포자도 엄중 처벌할 것” 등을 지시했다.

가짜뉴스는 국정감사장에서도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판 여론을 막으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충돌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은 “국가가 국민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것”이라고 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유통을 막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누가 봐도 허위 조작 정보거나 좋지 못한 의도로 조작한 정보에 대해서만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법적 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미 가짜 뉴스는 네이버 등에서 10년 넘게 계속됐다”며 “‘정규재 방송’ ‘신의 한 수’ 등 보수 방송(유튜브)들이 현 정권을 비판하니까 정부가 나서서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범정부 대책’을 보면 국민들의 자유의사 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며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고 때는 가짜뉴스를 단속하지 않던 경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공권력 행사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수사 중인 ‘가짜 뉴스’ 16건 가운데 14건이 현 정부 관련 허위 사실이거나 남북 관계를 공격하는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공권력이 주도했던 가짜뉴스를 이제 바로잡겠다는 것”이라며 “국민 신뢰와 사회적 통합,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고소 없이도 수사할 수 있다. 가짜뉴스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되는 이유다.

가짜뉴스는 뉴스 문장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일반 수용자가 진위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가짜란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가짜뉴스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선 국가와 정치·사회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고 있다. 가짜뉴스의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규제부터 시도한다면 사회적 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가짜뉴스를 ‘명백하게 사실이 아닌 허위 조작 정보’로 규정했다.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언론 뉴스의 형식을 빌려 ‘마타도어식’으로 유포되는 허위 조작 정보는 형법과 정보통신망법·공직선거법 등 실정법만으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 다만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정치·사회적 성향을 다르게 표현했다고 해서 가짜뉴스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자율규제안’을 마련토록 권고하고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불가피한 상황에서 법적 규제를 해야 한다. 가짜와 진짜의 판별은 정권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공정한 시민기구를 설치해 투명한 절차와 논의를 거치게 해야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지난 정권들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짜뉴스 개념을 정의하고 통제하려 든다면 이는 헌법이 금하는 ‘검열’ 행위로서 표현의 자유 탄압 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근원적인 처방은 제도권 미디어 뉴스의 불신, 소외계층의 상대적 박탈감 등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다. 아울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 국민 스스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진위 여부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