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보다 더 강한 무기는 평화다. 북한의 변화는 북한의 경제성장에서 온다.”
27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두 마디를 꼭 드리고 싶다.
이제 분단과 희생의 암흑시대를 마감하자. 평화와 희망의 통일시대를 준비하자. 통일은 긴 여정이다. 차분한 준비가 각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통합에너지를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6·2017년 촛불 정신에서 찾자.
이 모든 상황을 열어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사의를 표하자. 비핵화 공로는 트럼프에게 넘기자. 그리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고맙다고 말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도 상황을 자세히 전달해 주자. ‘평화열차’는 함께 달려야 한다.
생방송 덕분에 우리는 함께 꿈을 꾸었다. ‘도보다리 벤치 끝장 담판’도 지켜보았다.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미래를 고민한 것 같다. 그것이 통일의 길이다.
16년 전 2002년 5월 28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독일 귄터 그라스(1927~2015)가 판문점을 방문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목가적인 곳에 이런 군사·정치적 긴장과 대립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처럼 황당하다. 웃기는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인가.” 남북 정상은 그 벤치에서 긴장 완화와 평화를 이야기했다. 이 작가가 살아서 이 장면을 보았다면 어떻게 조언했을까? “이성과 인내를 가지고 노력하면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핵심은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 완전히 다른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이 함께 움직인 작품이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대한민국 사람과 대한민국 사회의 힘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감사드린다.
문제는 ‘돈’이다. 체제 보장은 미국이 하는 것이다.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체결이다. 북한은 이것과 함께 ‘개혁개방을 위한 목돈’을 하나 더 원한 듯하다. 이 돈으로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을 하려는 듯하다.
미국은 재정 부담에 난색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는 경제협력 조건으로 소액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핵 폐기 전체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국민과 함께 헤쳐가야 한다. 생방송 의미는 여기에 있다.
나는 다음 조건과 내용을 생각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년 내 완전폐기, 핵무기 2~3년 내 완전 폐기, 남북통일이 되기 전까지 주한미군 주둔, 체제안전 보장, 경제협력 목돈 지원이다.
독일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87년 9월 7~11일 제4차 동·서독 정상회담 이후 동독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됐다. “1989~1990년 2년 사이 서독 정부는 구소련과 무려 20개 조약과 협정을 체결했다. 경제·학문·기술 등 전 분야에 걸쳐 협력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통일에 대한 경계심을 없앨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사적인 안전 보장이 담보되어 있었다.” 서독 정부가 주변국에 제시하고 지불한 것이다. 우리는 역순위로 가고 있다. 독일 통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의 ‘평화열차’는 ‘통일열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희대의 역사 ‘쇼’다. 평화지상주의 꼬임에 빠져 이 나라를 제물로 바칠 수 없다.” 이런 심각한 비판이 있다. 그러나 세계가 주목한 이번 만남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북한 몰락을 기다리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독일을 보자. 사민당(SPD)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대 후반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야당인 기독교민주당(CDU)은 거세게 반대했다. 브란트는 동·서독 접근을 위해 제일 먼저 모스크바를 찾았다. 이어 폴란드 국경을 재확인하고 동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후 이산가족 만남, 의료진 교류, 함부르크-베를린 간 고속도로 건설 등 점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동방정책 정신은 ‘접근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였다. 선언문은 보면, 우리도 이렇게 추진되는 듯하다.
“지금 평화열차를 타지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장밋빛 청사진은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지방자치단체도 6·13 지방선거 이후 공식적 협력방안을 밝히자. 지방정부도 다 함께 평화열차를 타야 한다.
독일 유학 경험(1989~1996년)으로 비춰 보면, 통일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 안다. 그래서 2030년 6월 25일 월드컵 공동 개최로 남북한 영혼이 함께 한 번 만났으면 한다. 따뜻한 사람이 만난 오늘처럼, 통일은 겸손이다.
글.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