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A는 얼마 전에 이 사건 임야를 경매 받았는데, 그 뒤 확인하는 가운데 분묘 4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A는 그 분묘가 위치해 있는 곳이 이 사건 임야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으므로 임야의 가치를 높이려면 이를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A는 수소문 끝에 위 분묘의 소유자가 B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A는 B를 만나서 분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B는 이 사건 임야와 아무런 연고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분묘 2기는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묘로서 이미 40여 년 전에 설치한 것이고, 2기는 부모들의 묘로 15년 전, 5년 전에 설치한 것이라면서 이장할 수 없다고 합니다.
A는 B를 상대로 분묘 4기를 이장해 줄 것을 청구하려는데, 가능한지요?
답변 >>>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조상을 높이 숭배했기 때문에, 좋은 장소를 찾아서 조상의 분묘를 설치하고, 그곳을 조상의 시신이나 유골뿐만 아니라 영혼이 자리 잡고 있는 경건한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손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이를 존엄한 장소로서 존중해 함부로 분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그동안 오랜 기간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관습상의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다른 사람 소유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때 분묘란 그 내부에 시신을 매장해 죽은 자를 안장한 장소를 말하는데, 시신이 들어 있지 않은 가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관습상의 분묘기지권은 ①타인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②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고, 분묘를 철거하겠다는 약정 없이 그 토지를 타인에게 양도한 경우 ③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고 그 토지의 소유권이 경매 등으로 타인에게 이전되는 경우 ④타인의 토지에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하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의 기지를 점유함으로써 지상권으로서의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시효에 의해 취득하려면 외형적으로 보아 분묘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하고, 평장이나 암장을 한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분묘기지권은 등기가 없어도 성립하고,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며 그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은 존속합니다.
그런데 2000. 1. 12. 개정되고, 2001. 1. 13. 시행된 장사등에관한법률에 의하면 분묘의 설치기간이 15년으로 제한되고, 15년씩 3회에 한해 연장을 허용하며(현재는 분묘의 설치기간을 30년으로, 1회에 한해 최장 30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됐다), 토지 소유자는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에 대해 이를 개장할 수 있습니다. 위 조항들은 2001. 1. 13. 이후에 설치되는 분묘에 대해 적용이 됩니다. 그로인해 종전에 관습에 의해 인정해오던 분묘기지권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판결)의 다수견해는 2001. 1. 13.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는 종전과 같이 관습에 의해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질문에서 B가 설치한 분묘 중 2기는 2001. 1. 13. 이전에 이미 설치됐고, 2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 것으로 보이므로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시효에 의해 분묘기지권을 취득했으므로 그 철거를 청구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나머지 분묘 2기는 2001. 1. 13. 이후에 설치됐다는 것이고, 또한 아직 20년이 되지 않았으므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없고, 취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질문자께서는 B를 상대로 시효에 의해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분묘 2기(B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에 대하여는 그 철거를 청구할 수 없고, 분묘기지권을 취득하지 못한 분묘 2기(B의 아버지, 어머니 묘)에 대하여는 그 철거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전극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