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1일 자본시장법·시세조종·외부감사법 위반 및 분식회계·배임 등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실행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조직적 부정거래행위,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각종 불법행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의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지 3년7개월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 것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주식 1주를 제일모직 0.35주와 맞바꾸는 것으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정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 비율로 합병이 이뤄지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이 부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려는 내부 계획안인 일명 ‘프로젝트-G(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4’ 존재를 확인했다. 이 신문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은 합병 거래의 각 단계마다 삼성물산 투자자를 대상으로 거짓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계열사 삼성증권 PB 조직 동원,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정 등을 했다”고 말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제일모직의 가치가 고평가되는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동원됐다고도 판단했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2014년 외국 회사의 콜옵션 존재를 숨겨 1조800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 삼성바이오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인 2015년 말 임의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해 회사 가치를 약 4조5000억원 부풀려 분식회계를 했다는 점도 공소장에 담겼다.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삼성바이오의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가치는 합병 무렵에 보다 저평가됐을 것이고 이에 따라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합병 비율이 설정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검찰은 이 부회장과 삼성물산 소속 이사들이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업무상 임무가 있음에도, 삼성물산 회사와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을 실행해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증대 기회 상실의 재산상 손해를 가한 배임 혐의도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검찰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2018년 11월 금융당국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는 1년9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이 보도에 의하면 검찰이 이날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서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6월26일 이 부회장의 수사를 중단하고 그를 불기소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 부회장 측은 그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관련 법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따라 불기소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보도에 의하면 검찰은 이날 “수사팀은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이후 법률·금융·경제·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 내용과 법리, 사건처리 방향 등을 전면 재검토했다”며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증거관계로 입증되는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수사전문가로 구성된 부장검사회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해 기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사건은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대로 사건을 처분하지 않은 두 번째 사례로 기록된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7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피의자인 한동훈 검사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도 중단하라고 권고했지만,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는 한 검사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수사심의위가 도입된 2018년부터 올 2월까지 수사심의위를 거친 사건 8건 모두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수용해 사건을 처분했다. ‘검·언 유착’ 의혹 사건과 이재용 부회장 사건 등 최근 2건에서만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수사심의위 제도를 두고 다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2월28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같은해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뇌물 액수가 줄면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은 재판장 기피 문제로 공전 상태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 2월 파기환송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정준영 부장판사를 바꿔 달라며 기피 신청을 냈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재판을 하겠다는 예단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특검의 기피 신청을 기각했고, 특검은 지난 4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기피 신청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전병열 기자 jb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