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상소문 형식으로 ‘시무 7조’를 올린 ‘진인(塵人) 조은산’을 향해 ‘림태주 시인이 반박 글을 올리자, 이에 조은산이 재반박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칫 진영논리로 확산돼 이전투구가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자세히 뜯어보면 진실이 숨겨진 모순투성이의 일방적 주장이지만, 국민들은 혼란 속에 편 가르기에 동원될 수도 있다.
시무(時務)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을 의미하며 현 정부에서 화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를 옛 상소문 형식으로 올린 글이다.
지난 8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時務)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는 글이 게시되면서 화제가 됐다.
해당 청원이 4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음에도 게시판에 노출되지 않자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제기됐었다. 고개로 전환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의 공식 답변 요건인 20만 명을 넘어섰으며, 31일 오전 5시 기준 40여만 명이 동의를 한 상태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시집 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림 시인이 ‘하교_시무 7조 상소에 답한다’는 내용으로 ‘시무 7조’ 청원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신하가 올린 상소문에 임금이 답하는 형식의 글이 하교(下敎)다.
림태주는 이 글에서 “너의 문장은 화려하였으나 부실하였고, 충의를 흉내 내었으나 삿되었다. 너는 헌법을 들먹였고 탕평을 들먹였고 임금의 수신을 논하였다. 그것들을 논함에 내세운 너의 전거는 백성의 욕망이었고, 명분보다 실리였고, 감성보다 이성이었고, 4대강 치수의 가시성에 빗댄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이었다. 언뜻 그럴 듯했으나 호도하고 있었고, 유창했으나 혹세무민하고 있었다. 편파에 갇혀서 졸렬하고 억지스러웠고, 작위와 당위를 구분하지 못했고, 사실과 의견을 혼동했다. 나의 진실과 너의 진실은 너무 멀어서 애달팠고, 가닿을 수 없이 처연해서 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을 원하느냐. 일사불란하지 않고 편전(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에서 분분하고, 국회에서 분분하고, 저잣거리에서 분분한, 그 활짝 핀 의견들이 지금의 헌법이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너는 백성의 욕망을 인정하라고 하였다.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이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 치는 것이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너는 백성의 욕망을 인정하라고 하였다.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을 말하는 것이더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 치는 것이냐. 나에게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땅값이 풍선처럼 부풀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수십 채씩 집을 사들여 장사를 해대는 투기꾼들 때문에 제 자식들이 출가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위화감에 분노하고 상심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나의 정치는 핍박받고 절망하고 노여워하는 그들을 향해 있고, 나는 밤마다 그들의 한숨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는 온갖 조작된 풍문이 떠돈다”면서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학문을 깨우치고 식견을 가진 너희 같은 지식인들이 그 가짜에 너무 쉽게 휩쓸리고 놀아나는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섣부른 부화뇌동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어 모두를 병들게 한다. 내가 나를 경계하듯이 너도 너를 삼가고 경계하며 살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백성의 한숨을 천명으로 받든다”고 끝을 맺었다.
이에 조은산은 30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백성 1조에 답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림태주의 말을 재반박했다.
중아일보 31일 보도에 의하면 그는 “도처에 도사린 너의 말들이 애틋한데 그럼에도 너의 글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안에 것은 흉하다”고 했다.
그는 “나는 피를 토하고 뇌수를 뿜는 심정으로 상소를 썼다”면서 “정당성을 떠나 누군가의 자식이오 누군가의 부모인 그들을 개와 돼지와 붕어에 빗대어 지탄했고 나는 스스로 업보를 쌓아 주저앉았다”고 했다. 또 “너는 내가 무엇을 걸고 상소를 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며 “감히 아홉의 양과 길 잃은 양, 목동 따위의 시답잖은 감성으로 나를 굴복시키려 들지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너의 백성은 어느 쪽 백성을 말하는 것이냐”며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해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이라 했다”며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부탁한다”며 “시인 림태주의 글과 나 같은 못 배운 자의 글은 비교할 것이 안 된다.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글을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림태주를 향해 “건네는 말을 이어받으며 경어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한참 연배가 낮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용서해 달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글 전병열 기자 jb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