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민들은 고소한 사람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피해자를 찾아내는 행위 자체가 2차 가해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측근들의 추모와 애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언행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소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정치사회 지도자로서 신뢰와 존중을 받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실종 소식을 접하고 설마 했지만, 뒤이어 “서울지방경찰청이 전날 박 시장 비서를 지낸 7급 공무원으로부터 성(性) 비위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전해졌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결정적 요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이 전직 비서는 고소인 조사에서 2016년 이후 최근까지 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속해온 성추행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텔레그램을 통해 박 시장으로부터 받은 사적인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하고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박 시장이 누구인가? 그는 한국 사회에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성장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고 반부패, 정치개혁, 사법개혁 등 시민운동에서 선도적으로 활약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사회적 나눔과 혁신의 창의적인 모델로 시민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앞서 암울했던 1980년대에는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성희롱이 범죄임을 인식시킨 국내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당시 고소장에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힌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글을 직접 썼다. 그는 시장 취임 후 젠더 특보부터 신설했고, ‘안희정 미투’가 폭로됐을 때 “용기 있는 영웅들의 행동”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여성계에서 ‘원순씨’는 ‘페미니스트’와 동의어로 불린다고 한다. 서울대 성희롱 사건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박 시장만큼 여성 이슈 현장을 발로 뛰며 응원한 정치인도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상급식, 도시재생 등 생활밀착형 시정을 주도해 역대 최초로 서울시장 3선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성추행 사건에 연루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믿음에 대한 배신감과 과(過)보다 공(功)이 먼저라는 연민이 교차한다.
특히 고인의 장례 절차를 놓고 논란이 커져 답답한 마음이다. 서울시가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르고, 별도 분향소를 마련해 시민들이 조문토록 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외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비롯해 광주광역시, 제주시, 전주시 등에 분향소가 마련됐으며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추모 현수막’을 서울 지역 곳곳에 내걸었다.
일각에선 업무 수행 중 순직한 것이 아니라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소모임이 금지되고, 일반인 장례도 조문을 사절하는 마당에 서울시가 앞장서 분향소까지 설치한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 만에 35만 명이 넘어섰다. 청원인은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며 “그렇다고 그게 떳떳한 죽임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성추행 의혹을 받는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는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했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그의 유서에서도 정작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나 사죄는 없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주검을 놓고 당리당략적인 논쟁까지 벌였다.
피해자는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일부 시민들은 고소한 사람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피해자를 찾아내는 행위 자체가 2차 가해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측근들의 추모와 애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언행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보자.
글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