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Vegan, 소수의 문화에서 소비의 주류로

Vegan, 소수의 문화에서 소비의 주류로

채식주의자 뜻하는 ‘비건’, 음식을 넘어 다양한 산업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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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비건(vegan)’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구글에서는 최근 수년 간 ‘비건’ 검색이 90% 이상 증가했고, 2018년 유럽 트위터 트렌드도 ‘비건’이 1위를 차지했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2019년을 ‘채식주의자의 해’라고 선언하는 등 채식은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늘어나는 비건인구

채식은 육식을 피하고 식물성 재료로 만든 식사를 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먹는 음식에 따라 비건, 락토베지테리언, 프루테리언 등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이중 비건은 유제품과 달걀, 어패류, 가금류까지 섭취하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국제채식인연맹(IVU)’은 전 세계의 채식 인구를 1억 8,000여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의하면 식물성 고기 시장 규모는 지난 2010년 12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30억 달러로 10년 사이 그 규모가 2.5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건 트렌드는 더 이상 해외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채식연합은 우리나라에서 100~150만 명 가량이 채식인구로 추정되며, 이는 2008년 15만 명에 비하면 10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비건 인구가 급증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건강적인 측면이다. 현대 도시인은 과영양상태로 인해 심혈관이나 당뇨, 고혈압 등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를 채식을 함으로써 일정부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운동량이 많은 유명 프로 선수들도 채식만으로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할 수 있으며,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반려동물 문화가 일반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축산업계의 공장식 사육방식과 도축을 감성적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환경적인 측면의 비건

공장식 사육방식은 환경적인 측면으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세계식량기구 통계에 따르면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의 수는 2010년 566억만 마리에서 2017년 665억만 마리로 증가했고, 소는 2017년 한 해에만 3억만 마리가 도축됐다. 육식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축산업계는 공장식 축산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이런 공장식 축산의 확산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와 토양과 수질 오염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의견은 학술연구로도 증명되었다. 2019년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가 농업에서 나오는데, 그 절반 이상이 동물성 식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된다. 100g의 단백질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양을 비교하면 소고기는 105㎏ 이상인 반면, 두부는 3.5㎏ 이하다.

아마존 밀림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벌채는 소를 키우기 위한 농장과 사료를 얻는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건강과 안전, 환경 문제 등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비건은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군에서 친환경을 뜻하는 접두사처럼 쓰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비건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포르투갈은 공공시설 급식에서 채식 선택을 보장하는 법을 2017년에 통과 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학교 점심 급식에서 채식을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네덜란드는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모두 채식으로 바꿨고, 고기나 생선을 원할 경우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채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늘어나다

국내에서도 채식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비건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지난해 국내 채식 전문 음식점 수는 약 350개로 2010년 대비 133% 증가했다. 증가세는 고무적이지만, 전국적으로 350곳이라는 수치는 많은 것은 아니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식사를 선택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는 SNS 등을 통해 비건 식당 공유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건인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유통업계의 활보는 고무적이다.

2016년부터 비건 식재료를 소개해 온 마켓컬리는 지난 1월 지구를 위한 채식을 주제로 간편식, 디저트, 생활용품 등 3가지 카테고리에서 먹는 것부터 쓰는 것까지 150여 개에 달하는 비건 상품을 제안했다. 다양한 제품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비건 베이커리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올 상반기 기준 289%가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식물성 고기로 만든 간편식 만두를 출시했고, CU는 100% 순식물성 원재료를 활용해 만든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를 선보였다. 유제품까지는 먹는 채식인을 위해 농심에서는 채식라면을 내어놓았다.

롯데마트는 지난달 말부터 온라인몰에서 비건 상품만 모아 판매하는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식품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이나 화장품 등 570가지 제품을 모았다.

온라인 푸드마켓 헬로네이처는 이보다 더 앞선 지난해 7월 비건존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식품은 물론 생활용품까지 아우르는 원스톱 비건 장보기를 제시한다. 간편식품, 간편식, 베이커리, 스낵/아이스크림, 시리얼, 조미/양념/오일, 음료, 대체식품, 생활용품의 9가지 카테고리에 약 200개 상품이 준비돼 있다.

비건열풍은 식탁을 넘어 화장대까지 점령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에서 시작된 비건 화장품(vegan cosmetics)이 벌꿀이나 기름 등 동물에서 온 물질 자체를 쓰지 않거나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채식 열풍으로 인해 비건은 호텔가에서도 간과해선 안 되는 중요한 메뉴가 됐다.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선 최근 국내 호텔 최초로 비건 메뉴를 정식으로 출시했고,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파르나스’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친환경 와인 중 하나인 ‘비건 와인’을 업계 최초로 소개하며, 수석 소믈리에와 셰프가 함께 고안한 프렌치 스타일의 비건 메뉴 페어링을 3월부터 1층 로비라운지&바에서 선보인다.

비건을 선택한 이상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해소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에 사람들은 비건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을 공유한다. 지도에 체크하는 맵핑작업부터 SNS 해시태그까지,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비건을 위한 지도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비건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충분히 고려해 상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착한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하나의 문화로 크게 자리 잡을 비건 트렌드가 바꿔놓을 사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