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던 2014년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행복한 가정은 우환이 없어야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과잉보호가 문제 시 되기도 하지만 노인은 소외감이나 질병, 빈곤 등 우환이 겹쳐 우울한 생활을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그 대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노후가 보장된 노인과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노인은 다행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일자리가 있어도 일할 수 없는 노인은 호구지책이 급급한 실정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만, 부양의무자의 기피나 소재 불명 등으로 실질적인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노인들은 기댈 곳이 없다.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하는 노인들도 가정의 달이 무색할 정도로 고달프게 살아간다. 한국 노인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고단한 노후를 보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사회 2019’(2017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여성은 각각 72.9세와 73.1세가 돼서야 노동시장에서 은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빨리 일에서 해방되는 프랑스(각각 60,5세와 60.6세)는 물론이요 OECD 평균(각각 65.3세와 63.6세)보다 무려 10년 가까이 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일을 하고자 자발적으로 은퇴를 늦춘 것이 아니라 생활비 걱정에 은퇴를 못하는 노인들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고령자 58.2%는 취미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지만, 실제 61.8%의 노인은 생계 때문에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는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현대는 72.4%의 노인들이 자녀와 별거를 하고 있으며, 이 중 45.6%만이 연금을 받고 있다. 자녀나 친척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노인은 25.7%에 불과하다.
노인들은 주로 단순노무직 등 비숙련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한국의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무려 45.7%에 달한다. OECD 평균 13.5%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심각한 수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54.8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의 3.2배, 미국의 3.5배, 일본의 2.3배로 수치스러운 통계다. 게다가 정신적 고통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2013~2017년) 간 조울증 환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4.9% 지만, 70대 이상 환자의 증가율은 12.2%로 가장 높았다. 20대의 8.3%에 이어 60대도 7.2%로 나타나 증가세가 확연하다.
5월 어버이날만 되면 정치권에서는 연례적으로 노인 복지 문제 해결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구호에 그칠 뿐 실효성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들은 대변인을 통해 “어르신 복지 향상, 치매 국가 책임제, 사회 일자리 확충, 돌봄 서비스 확대, 생활안전보장, 노후소득 보장, 건강보험 확대, 부양의무제 전면 폐지 등 노후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며 이구동성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펼쳤다. 문제는 실현이다. 그러나 당리당략이 전제가 되면 정쟁의 대상이 될 뿐 집행은 하세월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안에서 노인 및 중증 장애인 가구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내년부터 폐지하고, 그 외 빈곤층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수급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부모나 배우자, 자녀, 사위, 며느리 등을 가리킨다.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하든, 부양하지 않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정부는 실제 돌보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재산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93만 명(2015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부양의무제 폐지가 시급한 이유다.
부양의무제 폐지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하려 해선 안 될 것이다. 또한 쓰러지는 노인들을 두고 예산 타령으로 차일피일할 일은 더욱 아니다. 다른 복지보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다.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조차 받지 못했던 2014년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언제까지 용납할 것인가.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