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일상을 ‘소확행’으로 만들어 보자

[전병열 에세이] 일상을 ‘소확행’으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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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누군가에게 우환이 있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가족이 행복해야 하고, 주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전병열 발행인(언론학박사)

이번 설에 많이 가장 받은 톡이나 문자 메시지가 복, 행복, 소원성취, 행운, 건강 등으로 대부분 신앙적인 기복을 추구하는 내용들이다. 복(福)이란 인생에서 만족할 만한 행운이나 그로 인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다. 즉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느냐가 삶의 질,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행복이란 사전적으로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행복은 욕구의 만족으로 얻는 기쁨이나 즐거움이다. 인간의 욕구는 한이 없으므로 한 번의 만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욕망을 또다시 갈구하게 된다. 따라서 행복은 잠시 느끼는 감정이지만,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건 본인의 몫이다. 생각에서 비롯되는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소한 만족에서 얻는 확실한 행복이 ‘소확행’이다. 과한 욕심으로 불행한 것보다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얼마나 소확행을 누리고 사는지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이번 설날이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명절의 의미를 크게 느끼며 살아왔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생각보다는 명절을 기해 그리운 부모 형제들과 즐겁게 지내고, 고향을 찾아 객지의 서러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큰집, 작은집을 돌며 집안 어른께 세배를 올리고, 마을 어르신을 찾아 문안드리고,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도 나에게는 소확행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성묘를 갈 때는 가문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도 느낀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세파를 헤쳐 나가는데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모시던 명절 제사를 묘제로 바꾸면서부터 북적거리던 설날 아침이 적막해지고, 고향 성묘를 나서는 길이 왠지 서글프지는 기분이었다. 예년에는 형제자매들이 각자 명절을 지내고 오후 늦게 고향으로 모여들었지만, 자녀들이 결혼하면서는 뜸해지기 시작해 이번 설에는 메시지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머니 돌아가시고는 큰집에 가는 게 서먹해지고, 형님까지 돌아가시고 나니까 조카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명절에 안 간다”는 지인의 푸념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 다리가 천 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 생전에는 6남매가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각자 가정을 이뤘어도 자녀들까지 24명이 모여 대가족의 잔치 분위기였다. 가족의 돈독한 우의가 마을 이웃들도 부러워했다. 사실 우리 가족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에 행복을 느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일상이 마비되고 대면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사실상 그런 만남이 없어진 것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이제 형제자매의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다면 나 역시 행복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나만 만족한다고 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주변이 모두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누군가에게 우환이 있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가족이 행복해야 하고, 주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교편을 잡고 있는 아들은 방학을 이용해 견문을 넓히겠다며 설날은 전후해 보름간 해외여행을 떠나고, 딸은 자격시험 준비로 명절을 함께할 수 없다는 연락을 아내가 받았다고 한다. 해외 여행객이 지난해에 비해 4~5배나 증가했다는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또한, 청년들의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내 행복만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나의 행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고 내가 만드는 것이다. 올해는 일상을 소확행으로 만들어야겠다.

언론학박사 전병열 본지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