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성인지 감수성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성인지 감수성의 편견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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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의 개념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지만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성평등 의식과 실천 의지 그리고 성 인지력까지의 성 인지적 관점을 모두 포함한다.

대법원의 판결로 처음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범죄 재판에서 다시 등장했다. 2차 공판에서 판사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 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그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성인지 감수성’을 이유로 징역 3년 6개월을 받은 안희정의 부인 민주원 씨는 “도대체 ‘감수성’으로 재판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성인지 감수성은 법적 증거보다 상위개념인지 묻고 싶다”며 항소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김지은 씨 측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해준 재판부에 감사한다”며 재판부의 판결에 기뻐했다. 안희정 측과 김지은 씨 측 의견이 갈리는 것처럼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남녀 간에도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성범죄 사건에 등장해서 ‘성인지 감수성’을 바로 보는 여론은 남성에게 불리하고 여성에겐 유리하다고 바라보고 있다. 과연 ‘성인지 감수성’은 여성에게만 유리한 단어일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남성도 여성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다. 여성다워야 한다는 굴레가 강해지는 만큼 남성다워야 한다는 굴레도 함께 강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은, 여자는 목소리가 크면 안 돼. 요리는 여자가 해야지. 여자는 화장을 하고 밖에 나가야 해. 여자는 의리가 없어!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말들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 역시 만찬가지다. 한국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성은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자가 주도 해야지. 남자가 꾸미고 다니면 좀 그렇지. 남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해! 남성 역시 다양한 말들도 억압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인 아기 상어와 곰 세 마리 역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강조한다.

아기 상어의 가사 중에는 ‘아빠 상어 뚜 뚜루 뚜루 힘이 센’ 이라는 가사와 ‘엄마 상어 뚜 뚜루 뚜루 어여쁜’ 이라는 동요를 들으며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기 상어의 가사를 받아 드리고 있다. 또한, 임신을 했을 때 여자아이는 분홍색의 물품을 구입하고, 남자아이는 파란색의 물품을 구입 한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성에 관한 편견이 완성된 사회에서 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달라지고 성별 간의 편견과 차별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혹은 남성이라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편견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요구하다 보면 내가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타인에게 또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불감하게 된다. 이러한 불감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을 약해지게 해 나의 행동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된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더 이상 ‘성인지 감수성’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용어가 아닌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 중 승자가 되는 쪽이 모든 것을 얻고 패자가 되는 쪽이 모든 것을 잃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여성이여서 차별 받는 것이 부당하듯 남성이여서 차별 받는 것 역시 부당하다. 성인지 감수성은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성과 여성 모두 성별을 이유로 부당함을 겪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특정한 성별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바르게 사용하여 우리 모두가 사회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이서연 기자 ls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