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화장 부추기는 사회, 이젠 어린이까지 뷰티살롱?

화장 부추기는 사회, 이젠 어린이까지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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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화장. 여자 아이들의 화장 붐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넘어 미취학 아동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 타파를 내걸고 한쪽에선 ‘탈 코르셋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다른 쪽에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까지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넘쳐나는 어린이 뷰티영상

어린이가 화장하는 뷰티영상은 유투브 등 SNS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당장 유투브에 ‘키즈 메이크업’이라고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연령이 낮아지면서 아이들에게 화장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는 꼴이다.

구독자가 194만 명에 달하는 한 어린이 유튜버가 공개한 ‘엄마처럼 화장하고 싶어요’ 영상은 조회수가 433만이나 된다. ‘만 4세 아기가 알려주는 인싸 되는 화장법’, ‘학교가기 전 5분 메이크업’ ‘초등학생 메이크업’, ‘아이돌처럼 예쁘게 화장하기’, ‘쥬쥬 메이크업 완성하기’ 등 어린이 혼자서 팩트를 들고 얼굴은 하얗게 칠하거나, 눈 두덩이와 볼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출연해서 어린이용 화장품을 권유하고, 어머니와 아이가 메이크업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초통령(초등학생 대통령)으로 불리는 ‘헤이지니’는 어린이 화장품을 다룬 영상을 다수 올렸다. 구독자만 155만 명인 헤이지니 답게 조회 수는 20만에서 100만을 넘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7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어린이 화장품까지 내놨다.

불황없는 아동용 화장품

지난달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를 보면 ‘아동용 화장품’이라는 명목으로 판매되는 상품은 4만4,900여건에 이른다. 엄마처럼, 언니처럼, 바비 인형처럼 화장해보라는 유혹이 넘쳐난다.

인터넷 오픈마켓 11번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어린이용 화장품 매출은 전년대비 363% 폭증했다. 지난 2015년과 2016년에도 어린이 화장품 매출은 전년에 비해 각각 94%, 25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녹색건강연대가 2017년에 발표한 전국 초·중·고 학생 4736명 대상의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서 여학생의 경우, 초등생 50.5%가 색조 화장을 했다고 응답했다. 물꼬를 튼 ‘키즈 메이크업’ 시장이 불황을 모르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동용 화장품’이 저렴하진 않다. 스킨 로션 세트, 마스크팩은 물론 립스틱, 매니큐어, 아이섀도 등 어린이용 색조화장품도 여러 메이커에서 나와 있다. ‘유해성분이 없다’며 어른 화장품보다 비싸거나, 유명 브랜드의 선물용 세트는 10만원 가까이 하는 것들도 있다. 장난감처럼 디자인되어 있거나, 어른들이 사용하는 것을 모방한 메이크업 박스 형태를 한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이전용 뷰티살롱?

어린이 전문 ‘화장 놀이터’도 생겨났다. 립스틱, 매니큐어 등 실제 화장품이 담겨있는 화장대를 갖춘 키즈카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린이 전용 뷰티살롱은 키즈 카페 내 체험 형 공간으로 운영되거나 별도의 매장에서 어린이 손님을 받는 식으로 영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아이의 얼굴·발·종아리를 마사지해주거나 손·발톱에 캐릭터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머리를 손봐주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대는 1만5,000원에서 4만 원대로 높은 편이다.

한 화장품 브랜드는 전국에서 ‘어린이 전용 뷰티 스파’를 운영하며 발 스파, 네일아트, 페디큐어 등을 제공한다. 30분 이용에 2만~3만5000원으로,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는 어린이 전용 코너가 생겼다.

높은 가격대에 비해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어린이 뷰티살롱에서 네일아트를 서비스 받고 있던 4세 여자아이의 보호자는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가끔 포상 차원에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뷰티살롱을 이용하기 위해 키즈카페에 간다는 초등학교 2학년인 여자 어린이는 “걸그룹처럼 예뻐지고 싶기 때문에 화장을 한다”고 답했다.

키즈메이크업 괜찮을까

어린이 화장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메이크업 트렌드마저 생기고 있지만, 키즈 메이크업에 대한 우려도 많다. 어린이의 보호자들도 걱정이 되지만 무작정 못하게 막을 순 없는 상황이다. 메이크업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문화로 자리 잡아서 강경하게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어린이 화장품 대다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식품의약처(이하 식약처)에서 정의하고 있는 화장품 유형으로 ‘어린이용 제품’조차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 식약처는 현재 12개로 나뉜 화장품 유형에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용 제품류를 추가하고 성분과 표시 기준을 강화하려고 했으나, 어린이용 화장품을 공식화한다면 오히려 어린이의 화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로 지난해 6월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이른 나이에 성인과 같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화장을 하는 여자 아이들 대다수가 화장이 지워지거나 번지는 것을 피하려고 야외활동을 꺼리게 된다. 단순히 외모지상주의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잠재력이나 꿈의 다양성마저도 파괴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색소 등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다 성장하지 않은 상태라, 어떤 성분이 구체적으로 유해한지 상세하게 알 수 없다. 아동용 화장품의 경우 달콤한 향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아이가 섭취하는 경우도 많다. 업체의 상품설명만으로는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키즈 화장품 열풍’에 대해 한 문화평론가는 화장품 혹은 완구 회사들의 마케팅을 원인으로 꼽았다. 화장을 하고 싶고 예뻐지고 싶다는 어린이의 소비욕구보다 어른들의 기업 이윤 추구가 우선된 것이다.

경제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키즈 화장품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보호자다. 보호자인 부모들 중 일부는 “아이가 예뻐 보이게 하는 것인데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인 경우도 있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 화장은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성인들의 ‘외모지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할 위험이 있고,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 거에 대한 일종의 규범이 추후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키즈 뷰티와 어린이 메이크업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어 왔다. 그 결과 현재 유럽은 완구용 화장품 판매에 대해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한 남성은 자신의 아이가 4살 때 엉덩이 패드와 가슴 패드를 착용하고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을 두고 전 부인을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프랑스는 소녀들이 참가하는 미인대회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법안을 제출한 프랑스의 국회의원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외모로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키즈 뷰티 열풍’과 관련한 제재가 없다. 미국 언론 ‘더워싱턴포스트’는 “K뷰티 산업이 이제 ‘슈퍼 어린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화장하는 어린이를 상품화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이들의 화장은 부모와 친밀감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가치를 주입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쩌면 여성의 성공이 아름다움과 밀접하다고 주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