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을 다녀올 때면 집에 있는 가족, 직장 동료, 친구들에게 기념으로 전하기 위해 지역의 특산물 빵을 사는 일이 잦다. 소포장된 빵은 나눠먹기에 편하고 운반하기에도 깔끔해서 관광객들의 구매욕구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본 이들은 알겠지만, 지역에 따라 모양만 바뀔 뿐 재료와 맛은 똑같은 빵이다. 밀가루 반죽에 팥 앙금을 넣어 지역 특산물이나 관광명소 모양의 틀에 구워내는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빵들이다. 이런 특산물 빵은 지역을 대표하는 상품이라지만 정작 내용물은 모두 같으니 다소 성의 없게 느껴진다. 개성 없이 모양만 바꿔 파는 특산물 빵, 이대로 괜찮을까?
여행 다녀올 때 한번쯤 사게 되는 ‘특산물 빵’
경주 여행을 다녀오면서 ‘황남빵’ 한 번 안 사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얇은 밀가루 반죽 안에 팥이 꽉 찬 황남빵은 경주시 지정 전통음식으로 경주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경주 황남동에서 만들어져 황남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게 이름으로 붙었으며, 경주빵으로도 불린다.
경주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황남빵, 경주빵 매장이 곳곳에 있다. 관광객들이 집에 돌아갈 때 어렵지 않게 빵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경주에 특산물 빵이 꽤 다양해졌다. 황남빵 외에도 최영화빵, 주상절리빵, 주령구빵, 신라미소빵, 연잎빵 등 다양한 빵 매장이 문을 열고 홍보 중이다. 모두 선물용으로 알맞게 포장에 신경 쓴 제품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빵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얇은 밀가루 반죽에 팥이 가득 들어있는 빵들이다. 팥 앙금을 만드는 방식이나 재료에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맛을 내는 빵일 뿐이다. 다른 것은 오로지 빵의 모양이다.
황남빵과 최영화빵은 동그란 빵 가운데 빗살무늬다. 주상절리빵은 거친 주상절리를 표현한 모양이다. 주령구빵은 이름 그대로 주사위 모양이고, 신라미소빵은 얼굴무늬수막새를 본 떠 만들었다. 연잎빵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특산물의 한계
비슷한 맛의 특산물 빵이 경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일까? 영덕의 대게빵, 속초의 설악단풍빵, 강릉 오징어빵, 진해의 벚꽃방, 안동의 하회탈빵, 담양의 죽순빵 등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비슷한 빵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통영의 꿀빵은 겉면이 조금 다르긴 하나 속을 팥으로 채운 것은 결국 같다.
경우에 따라 약간의 특산물을 첨가하기도 한다. 대게빵에는 대게가루가 들어간다고 홍보하고 있으며, 오징어빵에는 오징어추출물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비율이 매우 낮아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해 독창적인 맛을 내는 게 특산품, 기념품의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딜 가나 비슷한 특산물 빵을 팔다보니 특산품의 의미가 퇴색된다. 어느 지역에 가든 밀가루에 팥소를 채우고 모양만 바꿔 파는 빵들은 특산품을 통해 지방색을 보여줘야 할 지역민의 노력이 부족한 결과물이다.
아울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시각에서 이런 특산물 빵은 어떻게 다가올까?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있고, 국토가 넓은 나라에 비해 지역 간 이동시간이 적어 서울 외 지역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으로 유명해진 강원도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속초에서 설악단풍빵을 먹고, 강릉에서 오징어빵을 먹어봤다면 같은 맛의 빵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경주에 방문해 황남빵을 구입하고, 진해의 벚꽃빵까지 구입한 외국인이라면 속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영덕의 대게빵은 같은 맛과 디자인으로 인천의 소래포구에서도 판매한다. 전혀 거리가 먼 영덕과 인천에서 같은 대게빵을 판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우스울 수밖에 없다.
지역민의 노고가 담긴 특산품은 승승장구
위 사례와 달리 특산물과 지역 특색을 살린 빵을 판매하는 곳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전남 완도에서 수확한 전복으로 만든 프라임로스터스의 ‘장보고빵’은 비린 맛을 제거한 전복을 통째로 넣어 만든 독특한 빵이다. 전복이 통째로 들어가 완도의 특산물을 잘 살려낸 장보고빵은 현지는 물론 온라인 판매로도 인기가 좋다.
전북 전주를 대표하는 전주비빔밥을 빵으로 만든 천년누리의 ‘전주 비빔빵’은 초코파이로 점령된 전주에서 색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끄는 빵이다. 채소를 고추장소스로 볶아 속을 가득 채운 전주 비빔빵의 재료는 모두 국산이며, 가능한 가까운 지역에서 재배한 로컬 채소를 사용한다. 특별한 농산물이 나오는 지역이 아니지만 오랜 전통의 전주비빔밥을 상품화한 빵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문하고 한 달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남해 중현떡집의 쑥떡은 남해의 해풍을 맞고 자란 생쑥을 활용한 특산품이다. 4~5월에 자란 여린 쑥잎만 사용하고 우렁이농법으로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을 짓는 남해 중현떡집은 남해의 농산물을 적극 활용해 떡을 만든다. 생산량보다 주문량이 많아 항상 품절대란이 일어나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인기가 좋은 특산품이다.
이처럼 지역의 특색, 특산물을 잘 활용한 상품은 관광객들에게 늘 베스트셀러다. 반대로 특별한 매력이 없는 팥빵은 구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매출이 생계로 이어지는 지역민에게 좋은 결과로 남을 리 없다. 특산품을 개발하고, 좋은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는 것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지역민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남다를 것 없는 특산물 빵을 판매하는 이들이라면 고심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