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흐르던 금강은 서천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바다와 조우한다. 노을에 바다와 하늘이 붉게 물들고, 그 사이로 겨울 철새들이 한가롭게 날아다닌다. 10만 개가 넘는 갈대가 하늘거리는 신성리 갈대숲 사이로 겨울의 냄새가 스며드는 요즘이면 카메라를 대는 곳곳이 작품이 된다.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기후대별 생태계를 관찰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국립생태원은 서천에 온다면 절대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이다. 최근 문을 연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는 해양생물을 4D로 만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마른 솔잎을 밟으며 소나무의 향기를 느끼는 장항솔숲, 197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빈티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판교 등 정겹고 고즈넉한 풍경이 가득하다. 서해 마량포구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겨울의 시작, 아름다운 서천으로 떠나보자.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를 한 눈에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서해를 달리는 장항선 장항역 바로 옆에는 전 세계 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국립생태원이 있다. 열대우림과 사막, 온대, 지중해, 극지방 등 5개 기후의 생태 환경을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흥미롭다. 가장 색다른 볼거리를 자랑하는 곳은 열대우림을 재현해놓은 에코리움이다. 1년 내내 비가 내리고 상록활엽수림이 있는 중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열대우림의 풍경이 인상적이며, 아마존강의 커다란 물고기와 육지거북 등 다양한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새들과 식물이 서식하는 습지 용화실못이 있는 금구리구역, 온대기후의 식물 군락으로 피크닉 터전이 마련돼 있는 하다람구역, 운이 좋다면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스미구역 등이 있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국립생태원을 나와 자가용으로 10분만 가면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나온다. ‘지구생물의 80%는 바다에 살고 우리는 오죽 1%만 알고 있다’는 슬로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해양 생태계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해양생물 표본 5천점으로 만들어진 SEED BANK다. 4D영상실에서 입체 안경을 쓰고 다이나믹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철새와 갈대의 환상적인 어우러짐이 있는 ‘신성리 갈대밭’
6만 평에 달하는 넓은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신성리 갈대밭은 서천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반드시 들리는 곳이다. 갈대숲 한 가운데서 두 눈을 감으면 갈대 잎들이 부비며 바람에 스러지고, 서해로 흘러가는 금강의 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두 눈을 뜨면 갈대 사이로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물살이 언뜻언뜻 비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KBS 드라마 「추노」가 촬영될 정도로 아름답다. 마른 갈대가 서걱거리는 겨울이 오면 고니, 청둥오리, 검은머리물떼새 등 철새들이 찾아와 색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갈대 7선에 선정되기도 한 신성리 갈대밭은 눈이 오면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을 자랑한다.
여름철과 가을철에는 금강 철새 탐조투어, 작은 음악회, 연날리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서 갈대숲에서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씻기는 ‘장항 솔숲’ ‘스카이워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솔잎이 바스락거린다.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갯벌과 서해가 숨바꼭질을 하는 듯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솔향이 몸 속 구석구석까지 씻어주는 것만 같은 곳은 장항 솔숲이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자리한 항구 장항은 한때 장항제련소와 함께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곳이지만, 지금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키 큰 곰솔이 하늘로 쭉쭉 뻗은 산책길을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최근에 문을 연 15m 높이의 스카이워크는 솔숲과 서해 바다, 하늘을 모두 즐길 수 있다. 키가 큰 소나무 높이에 맞춰 지그재그로 바다까지 이어져 있으며, 길이는 286m에 달한다. 스카이워크의 끝은 갯벌 위다. 밀물 때는 기둥이 물에 잠겨 찰랑찰랑한 바다 위를 걷게 되고, 썰물 때면 갯벌 위 하늘을 걷는 셈이다. 나무데크는 쉽게 지나갈 수 있지만, 구멍 뚫린 철망을 지나갈 때면 등골이 절로 서늘해진다.
시간이 멈춘 ‘판교마을’과 ‘서천문화예술창작공간’
서천은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이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 많다. 1930년대 일제가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장항 일대는 전국에서 수탈한 자원과 곡식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즐비했다. 그중 하나가 지역민과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해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이 됐다. 건물 내부 콘크리트 기둥과 목조로 짠 천장 골격 등 쌀을 보관했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각종 공연과 전시가 열리며, 도자기에 색을 칠하거나 모시꽃 만들기와 같은 체험형 공방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이 옛 창고를 재활용한 공간이라면, 판교면 현암리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곳이다. 철공소와 쌀집, 사진관 등 나무 유리창마다 언제 적었을지도 모르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영화관도 양조장도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고, 무심히 흘러간 시간 사이로 누군가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일몰과 일출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마량포구’
동해에 정동진이 있다면 서해에는 마량진이 있다. 서천 마량리 마량포구는 바다를 향해 꼬리처럼 튀어나온 지형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일몰과 일출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해가 남쪽으로 가장 많이 기우는 동절기에만 포구 동남쪽 비인만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량포구에는 매년 연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올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서천에서 해보는 건 어떨까?
Tip. 맛 따라 멋 따라 즐기는 ‘서천시티투어’
서해안의 낙조를 배경으로 6만여 평의 광활한 갈대밭이 펼쳐진다. 희귀 철새가 화려한 군무를 연출한다. 말로 형연하긴 힘든 서천의 아름다움을 직접 두 눈에 담아보자.
서천군은 최근 몇 년간 서천의 관광자원을 대중교통으로 연계하는 ‘서천시티투어’를 선보이며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천시티투어’는 서천의 관광명소, 역사유적지, 먹거리 관광지 등을 당일코스로 여행하는 관광지 순환버스다. 서천의 유명 관광지를 저렴한 가격(성인 기준 4,000원/중식비, 입장료는 개별 부담)에 편하게 둘러볼 수 있으며 버스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동승해 관광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덧붙인다.
서천시티투어는 매주 화요일~일요일 1일 1회 운영되고, 월요일은 휴무이다. 최소 출발인원은 10명이며, 매회 10명~40명(선착순)이 함께 여행한다. 탑승료는 ▲청소년 이상 4,000원 ▲65세 이상 경로 3,000원 ▲장애인, 어린이(5~12세) 1,000원 ▲5세 이하는 무료다. 서천시티투어는 3개 코스로 나뉜다.
◇ 서천문화코스 (화~일요일 운행)
서천버스터미널(1차 탑승)-서천종합관광안내소(2차 탑승)-문헌서원-장항역 탑승(합류)-장항음식특화거리(중식)-솔바람길, 스카이워크-신성리 갈대밭(서천특화시장 또는 한산모시관으로 대체될 수 있음)-국립생태원-장항역-서천종합관광안내소-서천버스터미널 하차
◇ 힐링코스 (목 ․ 토요일 운행)
용산역 출발(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경유)-웅천역 도착-춘장대 해수욕장(중식)-한국최초 성경전래지기념관-마량리 동백나무숲-김특화단지(특산품)-솔바람길, 스카이워크-서천특화시장-서천역 출발(천안역, 수원역, 영등포역 경유)-용산역 도착
◇ 광역코스 / 서천↔군산 (토요일 운행)
서천종합관광안내소(1차 탑승)-장항역 탑승(합류)-국립생태원-6080 골목길맛집(중식)-솔바람길, 스카이워크(국립해양생물자원관)-근대역사박물관(군산)-서천특화시장-서천역 도착-서천역 출발
서천시티투어를 이용할 경우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입장료 할인(30~50%)을 받을 수 있다. 사전예약 및 문의는 서천군 문화관광홈페이지(http://tour.seocheon.go.kr)와 서천군 종합관광안내소(041-952-9525)에서 가능하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