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甲乙 관계는 법보다 역지사지로 해결해야

[전병열 칼럼]甲乙 관계는 법보다 역지사지로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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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17-08-10 10:08:50

최근 ‘갑질’ 논란이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갑을 관계는 강자와 약자의 대명사였다. 그동안 강자의 횡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해 왔다. 절대 평등이 없는 인간 사회는 갑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는 갑을이 공존하고 있다. 갑을이 조화를 이룬 사회가 민주 사회이며 정의 사회라고 할 수도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갑을은 위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한다.

갑을 관계에서 근래에 논란이 되고 있는 갑질은 갑의 일방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행되는 갑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을의 감정과 인격을 모독하고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행태이다. 갑질의 사전적 의미는 ‘갑을 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 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야말로 갑질은 정당한 갑의 행위가 아니라 약자인 을에게 강요하는 부당 행위를 일컫는다. 사실 지난날 소시민들은 갑을 관계에서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권리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약자가 참을 수밖에 없는 강자의 사회였다. 하지만 민주화된 현대사회는 평등 사회로 강자가 일방적인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약자를 보호하는 시민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젠 갑의 세상에서 을과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갑을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금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는 갑질의 행태를 보면 마치 봉건 시대의, 하인이나 머슴 부리듯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는 것 같다. 모 육군대장 부인은 손목에 호출 벨을 차게 하고 아들 빨래를 시키는가 하면 텃밭 농사와 뜨거운 전을 얼굴에 던지는 폭행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또 모 대기업 회장은 자가용 운전자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아 갑질 논란을 일으키고 경찰의 소환조사까지 받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땅콩 리턴 사건’, ‘남양유업 본사 직원 욕설과 폭언 사건’ 등 갑질 사건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갑질은 개인의 인격문제다. 갑질을 하고 싶은 유혹도 있을 수 있다. 힘들게 성취한 갑의 지위일수록 그 가치를 갑질에서 찾으려는 우매한 인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구조를 지닌 공직 사회는 시민에게 언제나 갑의 지위를 누렸다. 수요와 공급으로 형성되는 시장은 공급자가 갑의 지위를 가졌었다. 그러나 시민 의식이 대중에서 공중으로 변화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시대가 끝나고 능동적 시민이 주류를 이루는 시민사회가 활성화되고 있다. 고객이 왕이 되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이룩된 것이다.

범죄 행위는 법으로 예방할 수 있고 처벌을 통해 교화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법망을 벗어난 감정적 · 인격적 폭력은 인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인간성 회복은 사회 문화와 인성 교육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지나친 경쟁의식은 인성을 마비시키고 우위를 차지하려는 야욕만 키우게 된다. 현대 사회 구조는 경쟁 사회로서 승자 독식을 부추기며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조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갑의 지위를 얻게 되면 과시욕이 생기고 침해받지 않으려고 자존심이 강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시대가 바뀌면 의식 수준도 그에 부응해야 할 텐데 아직도 미몽 속에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갑의 지위를 향유하려는 의식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유력 인물들은 권력과 금력이 갑의 지위를 보장해 주던 시대가 아님을 인식해야 하며, 갑의 지위를 부여받은 대리인들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갑을의 입장을 바꿔 판단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사안들이며 조금만 배려해도 갑의 지위를 보호받을 수 있다.

선진 시민의식으로 갑질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로 수평적 소통이 활발한 사회가 돼야 한다. 갑을 관계는 오랜 관습이지만, 악습으로 변질된 갑질은 청산해야 할 적폐이다. 물론 범법 행위는 엄단해야 하지만 범사회적 캠페인으로 갑질없는 평등사회를 이룩하고 을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