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법 위반하는 야외 테라스, 단속에도 얌체 영업
직장인 박모(31) 씨는 요즘 밤이 두렵다. 여름철에는 지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날씨가 선선해져도 들리는 빌라 건물 1층에 위치한 편의점 노상 테이블의 소음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박 씨는 “저녁시간부터 오전 2~3시까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다”며 “창문을 열면 담배 냄새까지 집 안으로 밀려들어와 간접흡연의 피해까지 떠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야심한 시간, 술 한 잔 생각난 사람들이 술집 대신 편의점을 찾아 가볍게 한 잔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야외 테이블 아래에서 캔맥주나 소주를 마시며 음주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문제는 아파트, 빌라 등 주택가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까지 야외 테이블을 설치해, 주민들이 잠드는 시간에도 소음이 발생,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흡연이 금지돼 있긴 하지만, 제재하진 않는다. 먹다 남은 술과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모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몫으로 남는다. 아르바이트생 혼자 야간에 카운터를 지키는 것도 만만찮은데 청소까지 맡아 해야 하니, 가게 앞이 청결해지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학원생 이모(26) 씨도 여름 들어서 벌써 소음으로 민원을 두 번 넣었다.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원룸에 살고 있는 이 씨는 지금 집의 계약이 끝날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에는 인근에 편의점이나 음식점이 많아 좋았지만, 도로 위로 테이블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새벽까지 골목에 행인이 많아지다 보니 제대로 잠들기가 어려울 지경.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술에 취해 떠들고,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싸우는 일도 부지기수에 주말 밤이면 욕설이 오가는 소리를 듣는 건 일상이었다. 이 씨는 “어떤 때는 시장보다 더 시끄럽고, 심각한 수준이라 경찰서에 신고를 넣기도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소음 관련 단속권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문제는 사람 목소리로 인한 소음에는 처벌 규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민원이 접수된 이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면 이미 상황이 끝났거나, 피신고자 대부분이 고의성이 없는 소음이었다고 항변한다. 말할 자유도 없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지구대 관계자는 “사회 갈등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어 현장에는 출동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계도로 끝난다”고 전했다.
소음 유발의 근본 원인인 야외 테이블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야기가 팽배했지만, 편의점은 그 규정에서 애매하게 벗어나있어 단속도 쉽지 않은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편의점은 내부에서 음식을 조리해 판매하는 휴게음식점이 아니며,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있어 식품위생법상 영업신고 대상이 아니다”며 “편의점 내·외부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음주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청 관계자도 “편의점 외부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는 민원은 들어오지만 단속할 명분과 법이 없어 난처하다”고 말했다.
식품위생법상 편의점에서의 음주행위가 위법으로 간주하기 어렵지만, 인도나 도로변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은 도로교통법 위반에 해당한다.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교통에 방해가 될 만한 물건을 도로에 함부로 내버려 두는 것’은 불법이며, 이를 위반해 교통에 방해가 될 만한 물건을 함부로 도로에 내버려둔 사람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편의점 야외 테이블을 더해 모두 8,732건을 불법적치물로 단속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올 초 기준 서울시내 편의점 수만 1만여 곳으로 음식점을 더하면 수는 배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야외 테이블을 운영하고, 단속 건수에 입간판 등 다른 적치물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8,732라는 숫자는 너무 작다. 단속을 할 때만 테이블을 슬쩍 치우는 ‘얌체 영업’도 다반사다.
편의점 앞 인도나 도로변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이 불법 설치물이라는 것은 편의점 점주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고, 단속반에 적발되더라도 보통 계도에 그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야외 테이블 유무는 야간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점주들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야외 테이블을 포기하지 못한다.
천안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유모(40) 씨는 “편의점 앞에 테이블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심야 매출은 맥주와 안주류가 차지하고, 테이블을 놔두면 매출이 10%가량 증가한다”고 말했다. 서민업종에다가 편의점끼리 경쟁마저 심화되다보니 편의점 입장에서도 테이블 설치로 인한 매출을 무시할 수 없다.
매출을 위해 야외 테이블을 들였지만, 아르바이트나 업주들도 곤혹스럽기도 하다. 야심한 시각에는 음주를 할 수 없게 테이블을 접어두거나, 이용이 불가하다고 고지를 해도 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막무가내로 테이블을 펴고 마시는 것이다.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지만, 대부분 편의점 야간에는 혼자 근무하다보니 무섭고 난처한 것이다.
야외 테이블은 비단 편의점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치킨, 막창, 회 등 업종에 상관없이 도로 위에서 야외 테이블을 펼치는 일반 음식점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업 신고된 면적 이외인 야외 테라스, 옥상 등 옥외 영업을 하는 경우는 식품위생법 제37조를 위반, 엄연한 불법이다. 민원이 빗발치고 구청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를 한 후에 철거에 관한 점주의 의견을 듣게끔 돼 있어 강제적인 철거는 힘든 실정. 강력한 단속을 해도 사실상 솜방망이에 그친다.
늦은 시간 가벼운 맥주 한 캔으로 부담 없이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야외 테라스. 컵라면, 소시지 등 안주도 쉽게 구할 수 있어 혼술에도 제격이라, 앞으로도 편의점 야외 테라스는 더 인기를 끌 전망이다.
매출도 좋지만, 인근 주민들의 편안한 생활을 위해 절충해서 영업 중인 곳도 있다. 한 편의점 점주는 “편의점은 동네 주민들과 어우러져야 하는 가게”라며 밤 11시까지만 야외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시민들은 소란스럽게 술을 마시는 것을 자제하고, 편의점은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지자체는 균형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감시감독 해야 한다. 여유를 주는 야외 테라스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시민의식과 법안이 양립해야 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