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강, 부여에서 만나는 백제의 향기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강, 부여에서 만나는 백제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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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이 땅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에도 고요히 숨을 쉬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위로 쌓이고 쌓인 이야기가 바람결처럼 전해진다. 부여의 길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불러내는 문이다. 지금부터 그 문을 열고, 부여의 대표 관광지 10곳으로 떠나보자.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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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향기 따라 걷는 부소산
부소산은 해발 106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백제의 궁녀들이 목숨을 던진 낙화암이 나타난다. 치맛자락을 뒤집어쓰고 강물로 몸을 던진 그날의 장면은, 절벽 아래 출렁이는 백마강과 맞닿아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낙화암은 바위 위에 새겨진 역사처럼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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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함 속의 힘,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선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의 미학을 온전히 보여준다. 8.3m의 높이는 장중하면서도 단아하며, 석탑 곳곳에서 느껴지는 섬세함은 백제 장인의 숨결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탑을 지켜온 돌들은 사라진 왕국의 이야기를 고요히 전한다. 최근 리모델링된 박물관에서는 미디어아트와 VR 체험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꽃과 물의 정원, 궁남지
여름이면 천만 송이 연꽃이 수면을 가득 메우는 궁남지. 무왕과 선화공주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정원이다. 섬과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은 신선의 세계를 닮아 신비롭다. 특히 7월 연꽃 축제는 부여 여름 여행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금동대향로가 잠든 부여 왕릉원
능산리 왕릉원은 사비 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신성한 공간이다. 풍수지리상 명당에 자리한 무덤들은 백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는 그 자체로 백제 예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걸작.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백제의 숨결이 고분 사이로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하늘의 뜻을 묻던 바위, 천정대와 백제보
하늘의 뜻을 빌려 재상을 뽑았다는 전설이 깃든 천정대. 바위 위에 서면 백마강과 부소산성이 한눈에 들어오며, 절경과 더불어 고대의 정치철학까지 느낄 수 있다. 아래로는 백제보가 펼쳐져 계백 장군의 충절을 형상화한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금빛 물결 위로 흐르는 백제의 숨결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백마강 유람선과 수상관광
백마강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황포돛배에 몸을 싣는 순간, 시간은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강바람에 실려 오는 노랫가락 같은 물결 소리, 낙화암 절벽 아래로 스쳐가는 풍경은 부여 여행의 낭만 그 자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카누 체험, 강과 육지를 오가는 수륙양용버스까지—백마강은 늘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백제의 시간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
부여를 대표하는 테마 공간, 백제문화단지는 잃어버린 왕국의 숨결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역사 마을이다. 사비궁과 능사, 위례성, 생활문화마을까지… 이곳은 마치 1500년 전으로 여행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해설이 곁들여진 사비로 열차를 타고 둘러보는 체험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천년의 고요, 무량사
만수산 자락에 자리한 무량사는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고찰이다. 김시습이 말년을 보냈던 절집, 고려와 조선을 거쳐 다시 지어진 극락전, 그리고 오래된 석탑과 불상들은 천년의 세월을 한 호흡에 담고 있다. 절 마당에 서면 나지막한 산새 소리와 솔바람이 마음을 고요하게 어루만진다.

서동과 선화의 사랑, 서동요 테마파크
사랑이 국경을 넘어 전설이 된 이야기, 서동요. 드라마 세트장으로 조성된 서동요 테마파크는 마치 옛날의 왕궁 마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준다. 드라마 ‘계백’, ‘일지매’ 등 다양한 작품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덕용저수지를 배경으로 펼쳐진 산책길이 특히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성흥산 사랑나무
성흥산성 정상에 우뚝 선 거대한 느티나무는 ‘사랑나무’라 불린다. 사계절 푸르른 가지 아래에 서면 멀리 논산과 서천, 익산까지 조망된다. 드라마와 영화의 명장면이 탄생한 이곳은, 백제의 성곽과 어우러져 더없이 낭만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는 장소다.

백제의 향기를 따라 떠나는 길
부여 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이 아니다. 백제의 정신이 숨 쉬는 산과 강, 탑과 절, 그리고 한 그루 나무까지—모두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부여의 여행은 한층 더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