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발행인 에세이 | 고향,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 숨 쉰다

발행인 에세이 | 고향,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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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언제나 내 마음의 샘터다. 지친 날에도 그곳에 닿으면 세상 모든 소음이 가라앉고, 나의 호흡은 다시 고요해진다 .일과 피로, 삶의 복잡함 너머에 있는 내 안의 고요를 꺼내는 곳이다.

전병열 언론학박사/수필가

“당신이 왜 그렇게 고향을 찾으려 애쓰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힘들거나 즐거울 때마다 고향은 당신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잖아요. 조건 없이 반겨주는 그곳이 있으니 당신 얼굴에 환희가 넘치는 거죠.” 아내가 귀가 길에 조용히 건넨 말이다.

‘고향 가자’는 말을 꺼낼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던 아내의 반응이 서운하기도 했다. 내게는 안식처지만, 아내에게는 “휴식은커녕 일만 하다 오는 곳”일 뿐이었다.

동트기 전, 혼자서 논밭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잡초가 무성한 논밭이 안타까웠지만 지금의 처지로는 속수무책이라 경작을 포기한 상태다. 그 사이에 위치한 부추밭은 그나마 손길을 스친 곳이라 좀 덜한 편이었다. 잡초 반, 부추 반인 밭을 보고 “그냥 버릴까?” 고민하면서도 호미를 들었다. 더위는 피했지만, 잡초를 뽑아가며 부추를 골라내는 작업은 여전히 힘겨웠다. 한 움큼 쥐어 들고 부추를 분리하던 나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이걸 왜 하고 있지? 부추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득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매달려 있을까.”

그때 고향 후배가 지나가며 말했다. “잡초가 더 많네요. 그냥 버리고 우리 밭에서 베어가세요.” 나는 “직불금 신청 농지라서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네”라고 변명했지만, 사실 부추는 시장에서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누가 이 마음을 알까.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 아내는 “왜 이 무더위에 굳이 그렇게 힘들게 해요”라며 핀잔을 준다. 그래도 내게는 그 일이 인생의 활력이고 보람이다. 땀 흘린 만큼 사색의 시간도 깊어졌다. 부모님을 생각해서만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일에 매달려 있으면 마음이 평온하고 생각이 풍부해진다. 복잡한 문제의 해법이 떠오르고, 위로를 받는다. 부모님이 곁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태어나 가장 순수했던 시기를 보냈던 곳이기 때문일까. 내게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다. 그래서 또 찾는다.

그러나 아내는 이 평온을 알지 못한다. 그저 나를 위해 따라올 뿐이다. 시골은 아내에게 휴식처가 아닌 노동 현장이다. 비단 잡초뿐 아니라 넓은 집안 곳곳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까지, 혼자서 처리하기엔 벅차다. 그래서 아내는 고향을 좋아할 리 없다. “고향은 잡초와 청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시골은 도처에 일거리가 널려 있다. 살고 있는 집이 아닌 빈집을 관리하다 보니 더욱 그렇다. 알면서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에 때로는 억지를 부려 모셔가기도 한다.

그런 아내가 요즘은 내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내 고향 사랑을 이해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2박 3일간의 방문이다. 예전 같으면 졸라서 1박 2일 만에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은 오래 머물고 싶지만, 아내를 배려해 1박 2일로 맞추기도 한다. 물론 고향엔 일거리가 많다. 돌아오면 몸살이 날 정도의 피로가 밀려든다. 잡초와의 전쟁, 정원 솔질, 매실 농원 관리까지 해야 한다. 소싯적엔 과수원과 넓은 정원을 가꾸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고 나서는 갈수록 시골 일이 힘겨워졌다. 나이 탓도 있지만, 그 일 자체가 중노동이다. 농사는 접었지만 부추밭은 여전히 직접 가꾼다. 한 달에 한두 번 잡초를 매지만, 우기 때는 잡초와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고향을 찾는 명분이자 낙이다.

고향은 언제나 내 마음의 샘터다. 지친 날에도 그곳에 닿으면 세상 모든 소음이 가라앉고, 나의 호흡은 다시 고요해진다 .일과 피로, 삶의 복잡함 너머에 있는 내 안의 고요를 꺼내는 곳이다. 기억 속의 들길과 마당, 그리고 흘러간 세월까지도 고향은 나를 품어낸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 숨 쉬며, 내일을 향한 길을 힘차게 내딛는다. 고향은 단지 땅이 아니라 정서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