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에세이> 내 나이가 어때서……
“앞으로 나이가 발목을 잡는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봐야 한다”
선천적으로 동안(童顔)인 탓에 에피소드가 많다. 어릴 적에는 아이 같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어른스럽게 보이고자 애를 썼다. 객지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리게 보이는 게 싫어서 나이를 실제보다 두·세 살 많게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객지 친구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우리 세대는 형제자매 간 나이가 두·세 살 터울이 많은 시대다. 자연히 친구 동생 나이가 나하고 같은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막역한 친구로 지내오다 보니 동생을 소개받았을 때는 미안한 생각에 부자연스런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형 친구라고 나를 형으로 부를 때는 새삼 나이를 밝히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동안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신체적 나이에 맞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 흔히 나이에 맞게 처신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인생은 제각기 정신적 · 물리적 · 신체적 나이를 강조하며 자아 만족을 추구한다. 실제 나이와 주관적 나이로 구분해 본인이 인정하는 나이가 주관적 나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 실제 나이보다 10여 년은 어리게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은 못 속인다”며 때로는 자조적인 모습을 애써 감춘다. 심지어 나이를 거부하며 신체적 나이와 투쟁을 하기도 한다. 아침 등산길에 보면 젊은이들보다는 어르신들이 더 열심히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나이가 어때서” 등 대중가요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세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고령사회로 변화해 가는 가운데 노인들의 체력과 정신도 젊어지고 있다. 환갑 · 진갑 · 고희를 넘기고 희수(77세)와 미수(88세)가 지나도 생일잔치를 원치 않는다. 환갑잔치는 조선시대 영조 이후 가문의 중요한 경하 행사로 친인척과 친구 등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렀었다. 고희는 ‘인생 칠십 고래희’라고 했으며, 당나라 두보의 ‘곡강시’에 나온 말로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이지만, 2000년대 이후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이제 백수(99세) 잔치를 희망하고 있다. 예로부터 일생에 단 한 번 치르는 환갑잔치는 인생의 최종 잔치라고 생각했으나 장수 사회로 접어들면서 미수에 치르기도 이르다는 생각에 백수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백수연 정도는 돼야 장수로 경하를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한다. 법률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노인복지법은 65세 이상에 경로 우대를 한다는 조항이 있고,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수급액이 65세이기 때문이다. 1956년 UN이 65세부터 노인이라고 지칭한 후 노령화 기준으로 삼았지만, 2015년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0~17세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 중년, 80~99세를 노인으로, 100세 이상을 장수노인으로 생애 주기를 5단계로 구분했다.
우리나라의 정년 제도는 물리적인 나이에 의해 강제 은퇴를 해야 한다. 아직도 청춘이라며 주관적 나이로 살아왔지만, 공적(公的) 활동을 해야 할 때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생년월일을 밝혀야 할 때는 물러서야 하기 때문이다. 퇴직 후 계속 맡게 된 강의는 자기 계발은 물론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자존감을 높이고 아직 쓸모 있다는 희망을 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생님 몇 년 생이시죠?” “갑자기 왜?” “교육부 지침으로 이번 학기부터 연령 제한을 준수하라고 합니다.” “… …” 대학교 조교의 물음에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의도적으로 나이와 상관없는 일만 찾아서 했는데, 대학 강사는 정규직이 아니라서 설마 했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앞으로 나이가 발목을 잡는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봐야 한다.
글,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