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일어나면 바다가 펼쳐진다. 차문을 열고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다. 그곳이 어디든 자동차가 서는 곳이 앞마당이 된다. 관광지가 아닌 곳곳의 속살을 볼 수 있는 바퀴달린 집.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나고,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머무르는 ‘차박 캠핑’이 뜨고 있다.
‘차’에서 머무르다
차박은 차량과 숙박의 앞 글자를 따, 숙소를 따로 잡지 않고 자신의 차량에서 숙박하는 캠핑이다. 짧은 국내 여행에 적합하고, 차량 안에서 여행을 즐기기 때문에 타인과 접촉을 피할 수 있어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캠핑 여행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캠핑아웃도어진흥원과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사회공헌재단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 캠핑 산업 현황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18년 캠핑 이용자 수는 403만 명으로 전년 301만 명 대비 33.9% 증가했으며, 야영장뿐만 아니라 미등록 야영장이나 계곡·산지 등 전국 각지에서 고정적으로 캠핑을 즐기는 인구를 4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캠핑은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는 문화에서 보편적인 여행방법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캠핑에도 유행이 있다. 텐트를 치고 즐기는 ‘노지 캠핑’, 도구가 갖춰진 공간에서 즐기는 ‘글램핑’, 전기와 수도 시설 등이 갖춰진 곳에 텐트와 캠핑 용품을 챙겨 가는 ‘오토캠핑’ 등 시기별로 인기를 끌었던 캠핑은 다양했다.
올해의 대세 캠핑은 단연 차박이다. 지난 5일 기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는 25만 8천 건, 포털사이트 블로그 포스팅은 9만 건, 뉴스로는 3천 건 등 차박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자동차 트렁크에 누워 이불 밖으로 발가락을 빼꼼 내민 사진이나, 차박용 텐트를 설치한 자동차 옆에서 모닥불을 피워놓은 사진 등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을 보다보면 덩달아 훌쩍 떠나고 싶을 정도다.
차박은 시초는 낚시인이나 등산객이 차에서 쪽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다 캠핑 붐이라고 할 정도로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났고, 정형화된 캠핑장과 다닥다닥 붙은 캠프 사이트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캠핑 공간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며 차박의 시대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들까지 캠핑으로 합세하며 차박은 그야말로 여행계의 뜨거운 감자 수준이다.
성장하는 캠핑시장
한국관광공사가 SK텔레콤 빅데이터를 통해 2월부터 4월 말까지 국내 여행 패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캠핑장 수요는 전년 대비 전국 평균 73%나 급증한 수치를 보였는데, 차박 명소로 알려진 강원도 영월(470%), 경상남도 함양(412%), 전라북도 군산(408%), 동해 양양(377%), 서해 서천(340%) 등 차박 곳들은 평균보다 훨씬 웃돌며 폭발적으로 인기였다. 또한 차박 전용 오토캠핑장이 들어선 고산자연휴양림(전라권)과 밀양아리랑·함양 농월정(경남), 단양(충청) 소선암 등은 9월까지 평일 예약도 잡기 힘든 실정이다.
캠핑 용품의 매출도 도드라졌다. SSG닷컴이 6월 1일부터 7월 27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차와 트렁크를 연결할 수 있는 ‘도킹텐트’와 ‘에어매트’가 각각 664%와 90%씩 증가했다. 아이스박스류도 10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홈플러스 온라인몰에서도 7월 1일부터 19일까지 텐트(440%), 캠핑용품(6%)과 실내에서 즐기기 좋은 게임(195%) 등은 높은 매출을 기록하며 비슷한 소비 트렌드가 확인 됐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하기 위해 차박 전용 텐트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차박 텐트’ 매출은 133% 증가했다. 차량 트렁크와 간단하게 연결하는 형태의 텐트인 ‘도킹 텐트’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전달 대비 판매율이 608% 치솟았다. ‘차량용 냉장고’는 90%, 차량에 거치해 사용할 수 있는 ‘차량용 테이블’은 67% 증가했다. 캠핑 수요는 40~50대에서 20~30대로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특히 지난 2월 일반 차량도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게 된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은 차박 캠핑 열풍의 도화선이었다. 또 5월부터는 화물차의 차종을 변경하지 않아도 차량 적재함에 캠핑용 장비인 ‘캠퍼’를 장착할 수 있게 되면서 차박 캠핑의 인기는 날개 돋혔다.
불경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캠핑이다. 캠핑아웃도어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캠핑 산업 규모는 2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1% 성장했다. 2017년 1851개였던 등록 캠핑장 수는 2018년 기준 1900개로 늘었다. 캠핑 이용자의 1인당 연간 캠핑 비용은 31만5806원이고 1인당 연간 캠핑 장비 구입비용은 34만588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캠핑장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5% 늘어난 2781억원으로 추정된다.
식품업계에서는 밀키트와 캠핑용 간편식 등 제품 개발이 활발한 상황이다. CU는 7월 20일 소시지·부대찌개 등을 담은 캠핑용 먹거리 패키지 ‘편의로운 캠핑박스’를 출시했고, 현대그린푸드는 캠핑용 밀키트 브랜드인 ‘캠밀’을 내놓았다. 일반적인 밀키트보다 조리 과정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여름 한정 이벤트 상품에도 캠핑 용품이 등장했다. 음료를 먹고 쿠폰을 모으면 상품과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스타벅스의 서머 레디백은 신드롬 수준이었다. 온라인에서 10배 넘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하고, 서머 레디백을 받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웃도어브랜드 ‘하이브로우’와 협업한 할리스커피의 캠핑 굿즈 3종 세트 역시 판매와 동시에 품절 사태를 빚었다.
코로나19가 쉽게 종식되지 않는 한, 한동안 캠핑과 차박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자기만의 공간과 물품을 구축할 수 있는 캠핑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