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중소벤처기업부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슬로건으로 1기 로컬크리에이터 출범식을 열었다. 지역의 소(小)창업 생태계를 키우는 대표적인 창업정책의 하나로 로컬크리에이터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중기부가 선정한 1기 로컬크리에이터는 24개 팀이다. 로컬푸드 분야에서는 경북 의성에서 빈 공장을 낙차식 수경재배 농장으로 탈바꿈시킨 ‘젠틀파머스’, 배로 술을 빚은 울산의 ‘은경농원’ 등 7개 팀이 선정됐다. 동네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의 ‘어반플레이’, 제주의 로컬 식재료 제공 매거진 ‘재주상회’와 창신동의 봉제와 디자이너를 연결하는 ‘쉐어원프로퍼티’ 등 6개 팀은 지역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참여했다. 거점브랜드와 지역기반제조로는 제주 해녀를 모티브로 공연과 로컬푸드를 결합한 ‘해녀의 부엌’, 남해의 양곡 저장 돌창고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헤테로파티’ 등 5개 팀이 눈길을 끌었다.
로컬푸드, 지역가치 창출, 거점브랜드, 지역기반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컬크리에이터는 활약하고 있지만,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는 하나다. 바로 로컬의 힘이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을 뜻하는 로컬(local)과 창작자를 뜻하는 크리에이터(creator)의 합성어로, 각 지역에서 문화와 가치를 만들고 이를 산업화해 나가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소비된다. 즉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주민들을 이어주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은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일상적인 공간에서 다음을 창출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골목 상권이나 전통 시장 등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와 지역 자원,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그럼 애초에 지역창작자, 동네창착자가 아닌 왜 ‘로컬(local)’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일까?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로컬은 물리적인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컬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의 고향’이 제격이다. 지역 간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시대에서 나고 자란 고향이 갖는 의미는 과거에 비해 희미해졌다.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어떤 지역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고향에서의 삶보다 더 익숙해지거나, 문화적·정서적 코드가 일치한다고 느끼는 곳을 우리는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곤 한다.
J씨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서울의 갑갑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 제주도의 푸른 자연에 매료되어 제주도로 이주했다. 그는 제주도의 신선한 먹거리에 흥미를 느끼고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선보이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쿠킹클래스를 여는 등 부가적인 활동도 겸했다. 여기서 J씨의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제주도에 있기 때문에 찾은 것은 아니다. J씨의 운영 방침, 즉 ‘로컬콘텐츠’에 끌렸기 때문이다. J씨는 제주의 푸른 자연과 먹거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음식과 식당 운영 등으로 이를 재구성했다. 이처럼 정서나 가치관, 내재적인 동기 등에 맞춰진 물리적인 장소가 ‘로컬’이라는 의미로 재해석 되며, ‘로컬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로컬콘텐츠’가 생산된다.
로컬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빠른 접근성으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연결과 거시적인 흐름이 잠정적으로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역으로 확산하게 됐다. 이에 손을 뻗으면 닿이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더 안전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과 동네에 머무는 상태가 장기화 되며, 문화·소비 패턴도 빠르게 변화했다. 기초단체와 지역사회 위주의 코로나 방역 대책은 사람들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을 부채질 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 등이 지역 내에서 사용되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지역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증가한 것이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시대에 청년들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는 로컬로 눈을 돌린다.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 가심비(심리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소비 비율)를 중요시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하며 청년들 사이에는 탈물질주의가 퍼지고 있다.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사한지 2년이 된 S씨는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 작가인 S씨에게 서울은 확실히 기회의 땅이었지만,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그에 비해 늘 불안정한 수입은 S씨의 건강을 앗아가고 지쳐가게 만들었다. 익숙해진 도시에서의 생활 패턴을 잃지 않으면서 바다 가까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렇게 S씨는 바다 가까이에 집을 얻었고, 서울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수입을 늘려갔다. S씨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것저것 재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당장에 내가 부산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S씨의 경우처럼 청년들은 로컬을 시골이나 변두리, 지방이 아닌 혁신과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한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갑갑한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나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좋아하는 일을 로컬에서 펼치겠다는 열망이 기폭되고 있는 것이다.
열정과 아이디어가 충만한 청년 로컬크리에이터들은 해당 지역에 인재와 자본을 끌어오고,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움직임까지 모두 아우르는 로컬은 상품으로 따지자면 고유의 브랜드 그 자체다. 바야흐로 로컬의 시대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