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국가열등감’에 빠져있던 한국, 우린 선진국이야?

‘국가열등감’에 빠져있던 한국, 우린 선진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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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월 말 코로나19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확진자 증가로 위기도 있었지만, 신규 확진자 발생이 줄어들며 안정세를 찾아가자 세계가 방역 모범사례로 연일 한국을 치켜세웠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높이 평가받은 건 건국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지난 1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진행자 김어준은 “헐리우드 영화에선 언제나 미국이나 서양이 전 지구적 위기에서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데, 막상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미국을 원조하고 세계인을 구출하고 있는 건 우리나라라는 사실이 생경해서 기분이 묘하다”라고 말했다.

뉴요커 인터넷 캡쳐

한국에 거주하는 수필가 콜린 마셜(Colin Marshall)은 미국 유력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언급했다. 그는 진행자가 코로나19에 관련된 세계의 소식들을 전하면서 “이제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 같지 않아요?”라며 놀라며 만족스러워했다며,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선진국으로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국가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아직도 자기 나라를 후진국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내 한국인 친구는 이를 국가 열등감(national inferiority complex)이라고 표현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가 열등감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 같은 재난의 시기에 특히 심해진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분석으로는 “마이클 브린은 ‘새로운 한국인들: 어떤 나라 이야기’에서 그 원인을 일제 식민지 지배”로 해석했다. “한국인의 열등의식을 지속적으로 키운 일본의 세뇌 작업에 의해 한국적인 것은 촌스럽고 후진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고 인용했다.

이어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은 ‘한국은 특히 미국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라’라며,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 ‘한국이 이미 많은 면에서 미국을 추월했고, 한국인은 더 건강하게 오래 살며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실업의 위험이 더 적고, 빈곤 속에 살 확률이 더 적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간단하게 한국과 미국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이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만 이야기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칼럼은 코로나19를 대처하는 한국과 미국의 대응을 비교하며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진국이라고 결론 맺는다. 유령 도시가 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서울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카페는 붐비고, 거리와 공원에 사람들이 평상시처럼 다니고, 슈퍼에는 휴지가 넘쳐나고 있으니, 자신은 코리안 드림을 살고 있다고 하며 글을 마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캡쳐

지난 2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최근 보수언론들이 일본을 두둔하는 기사에 대해 “외교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국익이나 국가를 위한다기보다 사대주의적 속성이 근본적으로 강하고 내면에 식민주의 의식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특히 미국이나 일본이 아직도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여서 우리가 감히 대항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는 인식이 굉장히 강하다”며 “우리가 먼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대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진행자인 김어준 씨가 “보수 매체를 보면 우리 정부가 일본에 관해 ‘도움을 받아주시기 바란다’ 이런 태도를 보여주길 원하는 기조가 기사에 깔려있다”고 말하자, 정 교수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친구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日 요청 오면 코로나 협력 검토…반대여론에 신중한 정부’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27일자 보도를 언급하며, 기사는 ‘반일감정 때문에 정부가 일본 지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정작 짚어야 할 것은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는 것”인데 중앙일보는 “국내 반대여론 때문에 정부가 눈치보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또 ‘신천지 사태’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인 지난달 4일 ‘한국인이어서 미안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 중앙일보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을 겨냥해 “그 분이 보시는 지금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그분이 기억하시는 내 나라는 어떤 것이었는지 상당히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28일 연합뉴스는 아사히신문 보도를 인용해 “일본 정부는 만약 한국이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제공한다면 우선 성능 평가를 해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한국에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도 지원을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도 “보도에 비춰보면 만약 지원을 추진하더라도 일본 내 절차 등의 문제로 협의가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해당 기사에는 순식간에 만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언론을 비판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치나 사회 시스템의 논쟁에서 보수 언론 매체들은 늘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한국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항상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되고 선진국을 본받아야 하는 처지로 언론이 묘사했기에 한국은 스스로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번 코로나19 창궐은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늘 선진국보다 못하다고 비교 당하던 한국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의 대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한국을 주목했다. 한국이 모범이며 기준이고, 마치 그동안 한국 언론이 선진국 사례를 가져와 비교하듯 외국 언론이 선진국 사례로 한국을 꼽았다. 수많은 외신들의 찬사가 쏟아지자 국내 보도와 비교해보게 되면서 마침내 우리가 선진국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선진국이라 하면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국가를 일컫는다. 물론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다 앞선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도 부족한 복지체계나 사회 구석구석 약자에 대한 소소한 배려를 위한 장치도 부족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확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진단키트와 의료진의 헌신, 정부의 노력이 맞물려 우리나라 의료체계 역량의 우월성을 확인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가운데도 치뤄진 총선과 높은 시민의식 등은 우리가 경제, 사회, 정치면에서도 어느 선진국과 겨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했다. 이제는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때다.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