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긴 채 서울백병원에 입원했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방역당국은 환자가 거짓으로 진술할 경우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에 대해선 행정력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경북 지역 환자가 다른 지역 병원을 찾을 경우에 자칫 부당하게 진료 거부를 당하지 않도록 보완 조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난 9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구토와 복부불편감 등으로 3일 서울백병원에 입원한 78살 여성 환자 ㄱ씨는 전날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하지만 ㄱ씨가 머물렀던 4인실 병실에 함께 있던 나머지 환자 2명은 음성이 나왔다. 응급실과 외래, 입원병동 일부는 폐쇄된 상태였으며ㄱ씨는 서울의료원의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ㄱ씨는 서울백병원에서 진료 시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긴 채 진료를 받았다. 서울백병원 측은 “병원 진료 처음부터 대구·경북 방문 여부를 질문하는데 당시 거주지를 밝혔으면 바로 선별진료소로 안내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ㄱ씨 측은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평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온 서울아산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지난달 21일 정부가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을 지정한 뒤 대구에서 온 환자 상태가 경증이면 진료를 2주간 연기해달라고 권유해온 건 있지만 ‘진료 거부’라는 표현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서울아산병원 외에 서울 시내 다른 대형병원들도 대구·경북 지역에 거주하거나 이곳을 방문한 환자에게 가능한 한 진료를 연기해달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24일 경부터 대구·경북 환자들에게 진료 2주 연기를 권하거나 전화 상담을 통한 원격 처방을 해왔다. 서울대병원도 대구·경북의 경증 환자 진료를 2주 연기하거나 진료를 원할 경우 선별진료소에서 증상을 우선 확인한 뒤 진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현행법상 진료거부는 불법이다.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의료 거부 적발 시 1차 위반은 면허·자격정지 2개월, 2차 위반은 면허·자격정지 3개월, 3차 위반은 면허·자격 취소 처분이 내려지는 등 강력한 제재가 내려진다. 특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에는 특히 메르스, 코로나19 등 감염병 의심 등을 이유로 응급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2개월 면허정지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병원장도 의료진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3000만원 이하 벌금형 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같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이 같은 처벌 조항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의 진료 접근권 보장과 의료기관의 감염 차단이 서로 상충돼서다.
의료계가 감염병 의심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메르스 트라우마’라고 설명한다.
보건당국은 감염병 확진 환자가 나온 의료기관에 병원 폐쇄를 조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메르스와 같이 병원이 감염병의 ‘수퍼 전파자’ 역할을 하는 사례가 있어서다. 실제로 이번 서울 은평성모병원 등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오자 보건당국은 병원을 전면 폐쇄 조치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9일 브리핑에서 “현재 병원 폐쇄 등에 관한 지침은 메르스 때 기준에 따르는 것으로 매우 강하다”고 밝혔다.
병원 입장에서는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사회적 낙인’이 찍혀 경영난에 처할 수도 있다는 공포도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이번 코로나19 3번째 확진자가 나온 명지병원의 경우 환자수가 40%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서울백병원 같은 사례의 경우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거짓말을 판별하기 위한 수사력까지 갖춰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입장에서 확진자 발생은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이라면서 “메르스 당시의 경험에 비쳐 모두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당국도 이 같은 의료계의 불안을 인지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병원 폐쇄 등 일부 지침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한 상태다.
김 1총괄조정관은 “환자가 발생한 병원 등 의료기관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전문가 협의를 거쳐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병열 기자 jb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