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 중 받은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면 보훈대상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구타 등 가혹행위 등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어서 휴가 중 자살한 군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순 없더라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보훈 보상 대상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특별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망한 A씨의 어머니가 B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 취소소송(2017두47885)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A씨는 자살 직전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돼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정하게 된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어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육군에 입대해 2015년 포상휴가를 나왔다가 부대복귀일 오전 11시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A씨는 중학교 2학년때 단체생활 부적응 및 대인기피 성향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업문제로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는 입대 직후 실시한 육군훈련소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사고예측 위험 유형 자살 및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실시된 군 생활적응 검사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이 없음. 양호’ 판정을 받아 소속 부대로 전입했다. 그러나 이후 자대에서 실시한 적성적응 결과에서 ‘부적응이나 사고가능성이 예측되며 전문가 지원 및 도움이 필요하다. 자살 등이 예측되므로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소속부대는 진료를 받지 않도록 했고, 가족과 연계 관리도 하지 않았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이 군 복무 중 정비관과 선임병의 지속적인 지적과 질책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르게 됐다”며 “아들의 사망은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복무 생활로 A씨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했다거나 우울증이 악화해 자살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A씨의 자살은 주로 개인적인 사정과 정신적 어려움 등으로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해진 것으로 보이므로 보훈처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은 A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보훈 보상대상자는 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은 “망인이 자살 직전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은 A씨의 유서, 육군훈련소 복무적합도 검사, 입대 전 정신과 치료 전력 등을 A씨의 상태와 직무수행 간의 인과관계 판단 근거로 봤다.
전병열 기자 jb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