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사람들은 일상에서 탈출해 산과 계곡 바다로 내달린다. 더위를 먹으면 식욕이 감퇴하고 영양실조를 일으켜 기력이 쇠하여 각종 질병을 불러온다며 예로부터 더위를 피하는 풍습이 생겼다. 피서는 내일을 위한 활력소다. 도심의 빌딩 숲에서 냉방 시설이 더위는 식혀줄 수 있어도 신선한 공기와 청정 해변이 담은 낭만 속의 힐링은 느낄 수 없다. 후덥지근한 열기 속을 벗어나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이곳 ‘헌화로’를 달려보자. 부채길에서 만나는 전설 속의 부채바위와 육발 호랑이, 투구바위는 그 신비를 드러내고 일상의 스트레스는 파도에 밀려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동해의 장엄한 일출로 희망을 품고 내일을 향해 달려보자. 본지 photographer는 8월의 추천 관광 명소로 강원도 강릉시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동해의 장엄한 일출로 희망을 품다
2000년 밀레니엄 행사 때 조성된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은 동해안 최고의 해돋이 명소이다.
이곳의 모래시계는 지름 8.06m, 폭 3.20m, 무게 40톤, 모래 무게 8톤으로 세계 최대의 모래시계이며, 시계 속에 있는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꼭 1년이 걸린다. 그러면 다음 해 1월 1일 0시에 반 바퀴 돌려 위아래를 바꿔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이 공원에서는 시간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으며 세계 최대 모래시계(지름 8m)와 국내 최대 초정밀 청동 해시계(7.2m)를 볼 수 있다. 1999년 강릉시와 삼성전자가 새로운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총사업비 12억 8천만 원을 들여 조성했다. 원래 군사 주둔지로서 서울에서 정동 쪽, 정확히 광화문에서 정동 쪽에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잘해야 하루 20~30명이 타고 내리던 쓸쓸한 간이역 정동진역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 덕이다. 모래시계에서 수배 중이던 윤혜린(고현정 분)은 운동권 신분이 탄로나 경찰에 쫓기게 된다. 어느 날 정동진역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타고 떠나야 할 기차가 느릿느릿 역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경찰이 기차보다 빨리 도착했고 혜린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기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 역으로 떠나고 그 기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혜린의 안타까운 시선, 그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정동진역이 전파되었고, 역 플랫폼에 서 있는 소나무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고현정의 이름을 붙여 ‘고현정소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정동진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수평선 넘어 청정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가슴에 품고 또다시 내일을 향해 질주한다. 해넘이 시간에는 경포 호수의 석양으로 강릉 여행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에서 피안의 세계를 보다
이 길은 2천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 단구 지역이다. 정동진의 ‘부채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해 정동심곡바다부채길로 지명을 선정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그동안 해안경비를 위한 군부대 경계근무 정찰로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곳으로 천혜의 절경이 숨겨져 있다.
전설 속의 부채바위를 만나다
이곳 심곡의 서낭당에는 여서낭 세 분을 모신 전설이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바닷가에 나가보라는 말을 듣고 나갔다가 여서낭 세분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하고 서낭당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그림의 색상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본 주민들은 영험이 있다고 믿고 마을의 중대사를 고하며 제를 올리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은 200여 년 전 이 씨 노인의 꿈에 여인이 부채바위 근처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는 말을 듣고 새벽에 나가 부채바위 끝에 매달려 있는 궤짝에서 여인의 화상을 발견하고 부채바위에 안치한 후 이 씨 노인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았다는 설화다. 그 후 서낭당을 짓고 오늘에 이르렀다.
헌화로를 달리며 바다를 품다
헌화로는 해안도로로 바다를 메워 만들어졌으며, 바다 전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파도가 품 안으로 안겨온다.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란다. 헌화가의 전설을 담은 헌화로는 해안단구의 절벽을 따라 개설돼 있어 바위를 타고 넘실대는 파도가 손에 닿을 듯 생생한 해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신라 순정공의 왕후 수로부인 요청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벼랑 끝에 핀 철쭉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헌화가의 전설이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들려오는 듯하다.
강감찬 장군의 기개가 서린 투구바위와 육발호랑이
투구바위가 바다를 바라보며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예전부터 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바위의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투구바위라고 불려왔다. 또한, 이 지역에는 강감찬 장군과 육발호랑이 전설이 전래되고 있다. 육발호랑이는 발가락이 여섯 개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육발호랑이는 스님으로 변신해 기다리다가 ‘밤재길’을 넘어오는 사람에게 내기 바둑을 제안하고, 바둑을 이기면 그 사람을 잡아먹었다. 당시는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이 밤재길 밖에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강감찬 장군이 강릉에 부임해 주민들로부터 하소연을 듣고 육발호랑이가 변신한 스님에게 경고문을 보냈다. 일족을 멸하겠다는 말에 육발호랑이는 지레 겁을 먹고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는 설화다.
투구바위를 마주하자 강감찬 장군의 용맹스러운 모습이 오버랩 된다. 마치 강감찬 장군이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경포호수의 석양으로 강릉 여행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photographer 박상주 · 본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