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생존권 위협-시대의 흐름, 뜨거운 감자 ‘택시와 카풀’

생존권 위협-시대의 흐름, 뜨거운 감자 ‘택시와 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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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수만명의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에 극렬히 반대하며 국회 앞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 여파로 교통 혼잡이 곳곳에서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었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책임공방을 펼치고, 시민들의 반응은 갈수록 냉담하기만 하다. 2019년 택시와 카풀은 어떻게 되는 걸까?

카풀업계와 택시업계 간 갈등은 카카오가 기존 제공하던 이동 수단 서비스 플랫폼 앱인 ‘카카오T’에 카풀 서비스를 추가하면서다. 카카오는 지난해 2월 카풀업체인 ‘럭시’를 인수해 카풀 서비스를 준비해왔고, 지난달 7일 베타테스트를 시작, 17일에 정식으로 출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 택시기사가 카풀 영업에 반대하며 분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양측 갈등이 크게 점화되었다.

현행법상 카풀은 무조건 불법은 아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조(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 1항에 의하면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를 유상운송 금지의 예외로 두고 있어, 출퇴근 시간에 한해서 카풀 서비스가 합법인 상태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는 게 문제다. 출퇴근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결국 온종일 영업을 하는 것을 허용, 사실상 자가용이 택시 영업에 뛰어드는 상황이 초래 될 수도 있다. 택시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는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다.

대기업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카카오T’는 카풀뿐만 아니라 택시, 대리, 주차, 내비게이션 등 자동차와 관련된 서비스를 손님과 연결해주는 토탈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택시 매칭 서비스를 통해 손님이 택시가 필요한데도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시간대가 있다는 데이터가 확보되어 있고, 택시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카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카카오T’의 카풀은 아무나 운행할 수 없다. 자신의 차량을 카풀로 운영하고 싶은 사람은 자동차 등록증을 비롯 9가지 가량의 서류를 제출해 카카오측의 검수를 거쳐야 하며, 본인인증을 통한 검증도 이뤄진다. 운행방식은 손님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차량 중 손님이 지정한 목적지 까지 운행 가능한 기사가 즉흥적으로 픽업하는 식이며, 이는 기존 택시 매칭 서비스와 동일하다. 단, 카풀을 전문적인 영업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 운행 횟수를 제한하거나, 기사의 무직인 경우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은 아직까지 논의 중에 있다.

승객들은 오히려 카풀서비스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자는 280명(56%)인 반면, 반대 응답자는 143명(28.7%)에 그쳤다. 이는 승차 거부나 불친절한 서비스 등 택시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이 카풀 서비스 선호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불친절·승차거부·부당요금을 이유로 접수한 택시 민원은 매년 2만 건에 달한다.

직장인 최상현(33) 씨는 “금요일 저녁에는 택시를 잡는 게 하늘에 별따기”라며 “택시 이용자가 많은 시간대에는 택시 잡는 데 30분 넘게 소요되기도 한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대학생 정아영(23)씨는 “해외에서는 이미 우버와 같은 카풀 서비스가 정착한 사례가 있는 시대의 흐름이다”며 “택시 독점 시장에서 소비자가 언제까지 질 낮은 서비스를 받아야만 하냐”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카풀이 아무 문제없이 잘 정착한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국가는 마찰을 겪었고, 현재까지도 마찰은 이어지고 있다. 법이나 조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적용사례가 달라지므로, 기존의 택시업계와 새로 들어오는 차량 공유서비스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건 시장의 논리나 소비자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중재뿐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 정부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에 5년 동안 1달러의 추가 부담금을 부과하고, 그 금액은 택시 운전자들에게 보상금 형식으로 지급했다. 카풀 기업과 택시 업계의 갈등을 공생으로 풀어나간 것이다.

독일은 상업용 운전면허를 취득한 운전자만 우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한했으며, 미국 뉴욕시의회는 신규 카풀 차량 등록을 제한하는 조례를 의결하며, 새로운 제도를 통해 불만을 줄였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카풀 서비스인 ‘우버’는 불법이라고 규정했으나, 같은 카풀 서비스이지만 가격 상한제 정책을 도입한 ‘블라블라카’는 비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 의거 영업을 허가했다. 운전자와 동승자가 교통비를 줄이는 카풀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다.

각 나라별로 상황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해외의 성공사례를 우리나라에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 카풀 기업과 택시업계가 입장을 조율하고 있지만, 단체들마다 원하는 중재안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상충해, 좀처럼 결론이 나질 않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택시기사들의 최저 수입을 보장하거나, 포화된 상태의 개인택시를 줄이기 위한 감차보상금을 현실화 하는 등의 보상금 지급 방안은 그 규모가 막대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택시는 변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쓴다. 전화보다는 앱을 이용해 소통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들이 새로운 택시문명을 선택하는 한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혹자는 카풀을 반대하는 상황을 두고 영국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를 부수는 ‘리다이트 운동’이나, 인력거꾼이 택시를 반대했던 1925년의 일과 비슷한 양상이라고도 한다.

가까운 일본은 개인 차량을 이용한 승차공유 서비스가 금지돼 있지만, 카풀에 대항하기 위해 택시업계와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단거리 손님을 위해 기본요금을 인하하고, 신용카드나 스마트페이, 사전 요금 지불 등이 가능한 자체적인 앱을 개발해 고객을 끌어 모았다. 택시 한 대 전체를 광고로 이용해 손님들은 무료로 택시를 이용하는 한시적인 마케팅도 실시됐다.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끌어들여 잠재고객층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전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택시기사의 54%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층은 택시를 전화로 부르는 것보다 앱으로 호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12시간을 쉴 새 없이 일하고도 250만원 밖에 손에 못 넣는 수익구조는 과속운전, 승차거부 등과 이어져 택시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택시와 카풀은 신구문물의 충돌, 생존권 투쟁, 소비자의 더 나은 서비스 요구 등 다양한 이해가 맞물려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가 나서서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택시는 골리앗과 같은 대기업 카풀 서비스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 경제 논리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많은 삶이 위태로워진다. 택시업계가 스스로 자생하고자 하는 절실한 노력과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