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옛 문화유산의 도시로 흔히 경주를 떠올리는데, 경주 못지않게 풍성한 역사 문화자원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 바로 ‘함안’이다. 가야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인 고분과 아름다운 연꽃테마파크, 계절에 따라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물결을 이루는 둑방길 등 명소가 많아 시간을 넉넉히 잡고 와볼만한 곳이다.
훌쩍 다가온 올가을, 편한 신발을 챙겨 신고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으로 떠나보자.
해바라기와 연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움의 고장 함안
함안군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계절은 앞서 여름부터다. 해바라기와 연꽃이 흐드러지는 여름철부터 여행정보에 해박한 이들은 인파가 북적이는 휴가지 대신 함안을 찾았다. 지난 8월 초까지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 함안군 법수면 강주마을은 해바라기 수백만 송이가 피는 곳이다. 4만8천여 평의 해바라기 밭이 펼쳐져 있고, 함께 조성된 메밀꽃 단지 역시 은은한 자태를 뽐내며 방문객을 맞았다.
더불어 함안을 대표하는 꽃으로 연꽃이 존재한다. 함안연꽃테마파크에서는 여름내 연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가야읍 가야리 일원 10만9,800m2의 크기로 조성된 연꽃테마파크는 방치된 유수지를 활용해 조성한 생태공원이다. 그래서인지 인위적인 공원의 느낌이 아닌 소박함 가운데 은은한 연꽃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또한 함안연꽃테마파크가 특별한 이유는 고려시대 연꽃인 ‘아라홍련’ 때문이다. 2009년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 연꽃 씨앗이 지난 2010년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웠다. 꽃잎의 하단은 백색, 중단은 선홍색, 끝은 홍색의 아라홍련은 현대의 연꽃에 비해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어 고려 시대의 불교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연꽃이다. 700여 년간 자연의 품에서 잠들어 있던 아라홍련이 함안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운 사실은 함안을 연꽃의 고장으로 손색없이 만들어줬다. 최근 함안군은 이러한 신비로운 발굴 스토리를 가진 아라홍련을 관광상품화하고, 브랜드를 보호하고자 특허청에 18개 품목에 대한 ‘아라홍련’ 국내 상표권을 등록했다.
아라홍련 외에도 근대 시조문학의 선구자 가람 이병기 선생이 길렀다 해서 알려진 ‘가람백련’, 서울 경복궁의 연꽃 복원 품종으로 선정된 ‘옥수(법수)홍련’도 이곳에 자생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연꽃을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연밭 한가운데로 3km 길이의 탐방로가 뻗어있으며, 연꽃 장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연꽃의 청아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함안연꽃테마파크로 발길을 돌려보자.
‘아라가야’를 아시나요?
교과서에서 분명 배웠던 옛 나라인 가야는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부강한 시절에 비해 흔적과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미지의 왕국이다. 가야는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등 나라들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중 토기와 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아라가야는 독자적인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 흔적들이 바로 함안에 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에 방문하면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찾는 방법도 쉽다. 가야읍 시가지에서 남북으로 낮은 구릉이 이어진 말이산이 보인다. 여기에 40기에 가까운 대형 왕릉이 줄이어 있어 멀리서도 찾을 수 있다. 순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이곳에 처음 방문한다면 고분 바로 앞 함안박물관에 들러 아라가야의 역사를 파악한 뒤, 고분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함안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함안의 역사와 아라가야의 다채로운 유물이 전시돼 있다. 철의 왕국이었던 아라가야의 유물과 문화재는 예상을 뛰어넘는 다양성을 보여주며, 용맹한 아라가야 무사의 혼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아라가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불꽃무늬 토기도 빼놓지 말고 감상하자.
약 1시간 정도 함안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박물관 뒷길로 나가면 바로 말이산고분군에 오를 수 있다. 해발 68m라는 낮은 언덕을 따라 말이산고분군에 오르면 동네 뒷동산을 산책하듯 편안하다. 하지만 편안한 탐방로 주변으로 보이는 왕릉은 웅장한 규모를 보여준다. 초대형분인 4호 분은 높이만 10m다. 능선을 따라 37개의 대형왕릉이 줄을 잇고,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합치면 50기가 넘는다. 땅속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왕릉은 무려 1천여 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걸음을 뗄 때마다 미지의 왕국에 발 딛고 있음이 실감이 난다.
말이산고분군에서는 가야읍 시가지를 전부 조망할 수 있으며 여항산과 6.25 전쟁 최대 격전지인 서북산도 보인다.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이다. 게다가 이곳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예정하고 있다. 함안의 보물 같은 곳이니 필수 방문 코스로 꼽을 만하다.
특별한 여가, 함안 승마공원
함안박물관에서 갑옷 입은 아라가야 기마병의 조형물을 보고 온 터에 함안 승마공원에 이르니 감회가 남달랐다. 철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는 아라가야에서는 말에게도 물고기비늘처럼 촘촘한 ‘말갑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만큼 말을 아끼고 잘 다뤘던 선조들이었다. 그래서일까? 함안 승마공원의 첫인상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고 즐겁게 말을 타는 모습이었다. 함안 승마공원은 경주마 휴양조련시설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승용마 조련, 승마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15년 11월 개장한 승마장에서는 승마강습, 직장인을 위한 야간 승마, 장애인 재활승마체험, 어린이 승마체험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급 스포츠로 인식돼 비싸고 어려운 종목으로 느껴졌던 승마지만 함안에서는 건전하고 편안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승마가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돕고 자세 교정과 장애인의 재활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함안 군민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당연히 이곳은 군민뿐만 아니라 방문하는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평소 승마를 접해보지 못했던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 승마를 체험해보고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알맞다. 승마체험이 어려운 어린아이는 말먹이주기, 당나귀 마차 체험 등을 해볼 수 있고 말을 주제로 한 어린이 놀이터가 항상 무료로 개방돼 있다. 가족단위로 방문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승마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반짝이는 남강의 노을, 악양둑방길·입곡군립공원
신나는 승마체험까지 마치고 해 질 녘 석양을 감상하러 악양둑방길로 향했다. 함안의 악양둑방길은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338km의 제방을 축조한 곳인데, 이곳에 4월부터 11월까지 환상의 꽃길이 열린다. 양귀비, 안개초, 수레국화, 금계국, 코스모스 등 계절마다 색다른 꽃이 피며 장관을 연출한다. 악양둑방길을 걸으며 유유히 흐르는 남강과 그 위로 떨어지는 햇빛에 따라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면 일상에서 벗어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일상에서 얻지 못한 여유, 고요함, 따뜻함이 어우러지는 악양둑방길이다.
너른 둑방길 주변으로 풍차와 바람개비, 악양곳간과 쉼터, 윈두막 등 사진으로 남기기 좋은 조형물이 있으며 곳곳에 푸드트럭도 있으니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도 그만이다. 둑방길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은 연인이나 가족과 자전거를 타기 좋다. 때에 따라 둑길 걷기, 자전거 대축전도 열린다고 하니 잘 다듬어진 관광명소임이 틀림없다. 어느 시간에 가든 아름다운 풍경이 보장되는 악양둑방길이지만 특별히 기대하는 시간대가 있다면 해 질 녘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꽃밭과 둑방변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일품이다. 바위벽에 건립된 악양루에 오른다면 남강과 모래사장, 갯버들 숲, 들판과 서쪽 강을 따라 흐르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산인면에 위치한 ‘입곡군립공원’은 저수지 수변 산책로와 출렁다리가 관광 명품이다. 오는 10월에 무빙보트가 띄워지면 생태관광지로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 최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진정’의 ‘함안낙화놀이’와 조선 후기의 연못과 정원문화를 볼 수 있는 무기연당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수박’의 고장 함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특산물
함안을 대표하는 특산물은 단연 수박이다. 낙동강과 남강변의 물 빠짐이 좋은 사질토와 평야지대의 비옥한 토질에서 생산되는 명품 수박은 재배 역사가 200년을 넘었다. 함안은 네덜란드 누넴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씨 없는 수박, 컬러수박 실용화에 성공했고 전국 최고 품질의 수박 재배 1번지로 통한다.
특히 겨울수박은 80%가 함안에서 생산되는데, 이처럼 함안수박은 전국 최초, 최고의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전국 최초 수박 재배, 지리적 표시제 등록, 컬러수박 실용화, 무가온 재배와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수상 등 빛나는 명성에 걸맞게 맛이 일품이다.
이 밖에도 국내 최초로 일본에 수출한 파프리카, 수박 대체 작목으로 육성한 백자멜론과 노을멜론도 고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명성을 자랑하며, 임금님께 진상한 함안곶감, 포도, 단감, 연근의 주산지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함안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함안불빵’이 주목받고 있는데, 함안불빵은 100% 지역 농민들이 일궈낸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수제빵이다. 함안불빵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달걀, 우리밀, 수박, 곶감 등으로 만들어지며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불꽃무늬토기의 불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방부제와 인공색소를 쓰지 않는 함안군 대표 홍보 건강식품이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