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트래블 고요한 열정, 공주에서 만나는 시간여행

[공주시 트래블] 고요한 열정, 공주에서 만나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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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젖줄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삶을 영위시킨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어귀에서 선사시대의 삶이 시작됐고, 바다와 이어진 물줄기로 중국의 문명이 스며들었다. 무령왕의 백제를 거쳐 명성왕후와 김구 선생까지. 푸른 금강 물줄기와 계롱산 산자락 사이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삶의 흔적들이 공주를 아리도록 아름답게 만들었다.

▲공산성

475년 한성에서 도읍을 옮기고 538년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 공주는 백제의 중심이었다. 도읍을 지키기 위해 공산성을 쌓았고, 성의 자연 해자 역할을 하는 금강을 통해 중국의 남조와 교류하면서 백제는 또 한 번의 번영을 누렸다.

금강변을 따라 2,660m에 이르는 성곽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동쪽 벽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간이 석성이며, 성벽 위로 산책할 수 있도록 계단이 마련돼 있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과 공주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1,500년 전 백제 사람이 쌓은 성벽을 21세기에 걷다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성 안에는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어 옛 사람들의 생활이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전통놀이를 하거나 백제왕족 복장 체험을 하는 등의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

그야말로 백제의 타임캡슐,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은 공주 백제 문화의 백미다. 삼국시대 왕릉 중 신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 1971년 세상 사람들을 크게 흥분시켰다. 무령왕릉은 발굴 이후 일반에게 공개돼 출입이 가능했으나, 현재 훼손이 우려돼 영구 폐쇄된 상태. 하지만 모형관이 재현돼 무령왕릉을 실제로 들어간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마련돼 있다.

공주에서 백제만 보고 간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김구 선생이 수개월간 승려로 살았던 사찰과 한국 구석기 시대를 연 선사유적지 등 유서 깊은 곳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석장리 유적지

1964년 발견돼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된 석장리 선사유적지는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에서 인류의 시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유적지에 발을 들이는 순간 왜 구석기인들이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자락,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 드넓은 평지가 포근하게 품어주는 느낌이다.

▲마곡사

구한말 명성왕후의 비극적인 죽음에 비분강개한 백범 김구 선생이, 복수의 명분으로 1896년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한 뒤 수감됐고, 2년 뒤 탈옥하여 떠돌다 머리를 깎고 몇 달간 승려 생활을 한 곳이 공주마곡사다. 마곡사에는 선생이 삭발한 바위, 직접 심은 향나무, 기거 했던 백련암 등, 조국의 큰 스승이었던 김구 선생의 흔적이 가득하다.

▲풀꽃문학관

시간은 강물 같다. 천천히 고요해 보이면서도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흘러간다. 공주의 시간이 흘러 정착한 곳은 구도심, 낡아서 소중한 것들로 가득한 찬란한 거리다.

이 거리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시처럼, 시인은 공주에 이끌려 공주에서 살고 있다. 풀꽃문학관 건물은 80년 된 일본식 가옥으로,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출근하여 꽃을 가꾸고 돌을 고른다. 시인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순수함이 피어나, 마음의 상처까지 말끔하게 치유되는 느낌이다.

문학관 근처 구도심은 시 ‘풀꽃’ 만큼이나 애틋한 분위기다. 전국에 몇 개 안 남았다는 나무 전봇대, 문 닫은 극장, 폐가가 된 한옥, 오락실 등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살려서 카페가 됐다. 중장년에게는 추억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신선한 따뜻함으로, 새것이 자아내지 못하는 낡고 소중한 것들에 매료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시청, 극장, 양조장, 직물 공장, 도립병원, 학교가 몰려있던 옛날 번화가는 골목 재생 프로젝트 ‘잠자리가 놀고 간 골목’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잠자리를 잡으러 밤늦도록 뛰놀던 골목에서 다시 북적거려 보자는 소박한 뜻이 담겨있다.

▲공주밤

공주에 왔으니 특산물인 밤은 꼭 맛봐야 한다. 공주밤은 일교차가 크고, 계룡산의 청정한 공기와 물, 토양, 유기질퇴비로 재배, 밤을 강제로 떨어뜨려 수확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알밤만 수확해 그 맛이 일품이다. 밤으로 만든 묵, 밤, 잡채, 찌개, 국수 등 각종 맛있는 음식들이 한여름 더위로 잃었던 입맛도 돌아오게 할 것이다.

옛 방식을 그대로 간직한 공주는 국밥도 잊지 말자. 한우사골을 가마솥에서 이틀간 푹 고아내어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에, 양지머리와 사태를 삶아 넣고, 공주에서 난 파, 무, 마늘, 고추 양념 등을 듬뿍 넣는다. 양지 속살에서 우러난 기름과 다진 고추 양념이 빨갛게 녹아들어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뒷맛을 자랑한다.

70만 년 동안 사람을 품어 온 보드라운 땅 공주에 지금은 녹음이 가득하다. 과거처럼 현재도 여전히 뜨겁고 아름다운 곳,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안의 열정을 돌아볼 수 있는 곳. 올 여름 공주로 떠나보자.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