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성폭행 나도 당했다… SNS로 운동 확산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에서 비롯해 문단, 문화 예술계에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시민들은 공감하며 격려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발뺌과 진실 되지 않은 해명으로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애초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촉발됐다. 할리우드의 거물인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사건이 폭로된 이후 영화배우 얼리사 밀라노가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SNS에 #MeToo라고 써 달라”며 미투 운동을 제안했다. 미투 운동을 제안한 지 하루 만에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리트윗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현직 여성 검사인 통영지청의 서지현(45)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안태근 전 검사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후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서지현 검사의 글에 따르면 서 검사는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인 안태근(52·사법연수원 20, 추후 검찰국장)에게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 등 강제추행을 당했다. 이후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는 선에서 정리하기로 했으나 그 후 어떠한 사과나 연락조차 받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까지 받았다.
검찰에서 촉발된 최근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와 학계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영향력을 가진 특정인의 눈에 드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는 업계의 특성상 가해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윤택 씨의 경악할 만한 성추행, 성폭행은 연극판에서 그가 누렸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그의 행위는 극단 내 모든 사람이 알만할 정도로 공공연하게 있었다. 마사지 등을 가장한 성추행 행태를 목격한 숱한 ‘방관자’들이 있었고,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연대가 있었다.
‘미투’ 바람에서는 대학가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직을 맡았던 배우 조민기(52) 씨로부터 성추행을 받았다는 학생들의 의혹이 제기 됐다. 조 씨는 대학 측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면직처분 됐다.
대학 내 조직문화는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데다 위계적이다. 특히 지도교수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대학원생들에게는 ‘영원한 을(乙)’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피해양상이 고질적이다. 논문과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는 지도교수들에게 불만이 있어도 제대로 얘기할 수가 없다.
성희롱·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조직의 싸늘한 시선이다. 특히 기업에서 성추문 사건은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골치 아픈 일로 치부되기 때문에, 대다수의 기업들은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일부 권위적인 상급자들은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침묵하고 외면하는 가로 충성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입을 여는 것도 어렵다. 현행법상 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단 증거를 수집해야 하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성추행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다 ‘여자도 틈을 보였으니까’ ‘노출 있는 옷을 입으니까’처럼 왜곡된 사회적 인식까지 더해지면 피해자는 피해를 입었는데도 더 깊이 숨어들어가게 된다.
가해자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쉽지만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기엔 법은 너무도 부족하다. 증거 수집이 애초에 쉽지 않은 성추행 사건은 ‘증거 없음’으로 끝나고, 증거를 수집하기 쉬운 ‘명예훼손’ 혐의는 쉽게 인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가해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해 ‘명예훼손’ 피의자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보통의 삶을 포기해야 가능하다.
페미니즘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생존자’라고 한다. 법률적 의미로서의 ‘피해자’가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보니, 자신의 삶이 직면한 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폭력적인 사건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음을 축복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피해자들의 폭로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과 시민들 간의 연대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SNS에 해시태그로 ‘위드 유(WIth You)’라는 키워드를 달아 지지의 뜻을 밝히는 ‘위드유 운동’으로 퍼졌다. 일부 문화계 관객들은 공연계 성폭력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자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미투 운동은 그저 일시적인 폭로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변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행태를 고치는데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던 성폭력 문제를 쉬쉬하던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