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겪던 시절 청으로부터 고립된 조선의 기구한 상황을 잘 보여줬다. 고립된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성곽을 따라 전투를 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보여줬던 영화 속 배경인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다.
광주는 남한산성을 비롯해 잘 보존된 역사와 자연의 풍광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여행지다. 수도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주는 지역의 70% 이상이 산지일 정도로 산과 계곡이 많고, 맑은 공기가 서려 있다. 눈에는 아름다움을, 마음에는 편안함을 전해줄 광주의 비경 속으로 떠나보자.
병풍처럼 둘러진 아름다운 성곽 ‘남한산성’
치욕의 요새라 불리기도 하는 남한산성은 사실 백제 때에는 자랑스러운 대상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백제인들에게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장소이자 진산이었다. 그 증거로 남한산성 안에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 잡고 있다.
백제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전한 장소로 더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치욕의 역사가 무색하리만치 남한산성은 매우 아름답다. 잘 정돈된 성곽 길을 20분쯤 오르면 아름다운 굴곡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진 남한산성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움은 세계의 인정을 받아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식 등재됐다.
남한산성에 도착했다면 앞서 말한 숭열전을 거쳐 수어장대에 올라볼 것을 추천한다. 수어장대는 병자호란 시 장군들이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그 역할에 맞게 조망이 좋다. 수어장대에 오르면 양주, 양평, 용인, 고양, 서울, 인천까지 바라볼 수 있다.
훗날 영조와 정조가 효종의 능소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면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새겼다고 한다. 수어장대의 탄탄한 누각에 잠시 앉아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후대 왕들의 마음을 상상해보니 남한산성의 아름다움이 훨씬 값지게 느껴진다.
시민들의 식수원을 따라 시원한 드라이브 ‘팔당호’
수도권 시민들의 주요 식수원인 팔당호는 주변도로가 아름답게 정비돼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곧 다가올 봄에는 벚나무가 아주 환상적이다. 지금은 겨울이 머무르는 중이라 고요한 가운데 옅은 물안개가 덮인 호수의 풍경이 볼 만하다. 팔당호를 한 바퀴 둘러보며 ‘팔당물안개공원’에 들러보는 것도 좋은 코스다.
팔당물안개공원은 봄, 여름, 가을에는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기 좋고, 겨울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팔당물안개공원 초입에서 팔당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인데, 전망대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없어 탁 트인 호수 위로 아름다운 일몰이 펼쳐진다.
숨어들고 싶은 산자락 ‘앵자봉’과 ‘천진암’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는 뜻의 앵자봉은 높은 산이 아님에도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들기 좋은 모양새다. 앵자봉은 신유박해 때 가톨릭교도들이 숨어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산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깊은 골짜기에 숨어든 느낌이 든다.
이곳에는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인 천진암이 있다. 18세기 중엽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는 천주교 강학이 열렸는데 천진암이 대표 장소였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는 천진암과 관련된 시문이 여러 편 등장하기도 한다. 강학이 열리던 장소라 그런지 고요한 가운데 산새 소리와 계곡의 나긋한 물소리만 들린다. 마치 산이 앵자봉과 천진암을 품고 있는 것처럼 포근함이 느껴진다.
겨울철이면 천진암에 들어오기 위해 거치는 우산천 길목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썰매장과 얼음폭포가 만들어진다. 겨울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특별한 장소다. 추운 나날이지만 가족과 함께 신나게 눈썰매를 타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기에 알맞다.
한편, 광주시의 먹거리로는 남한산성 백숙 및 산채정식, 남종 붕어찜, 곤지암 소머리국밥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