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기고 공영방송의 공정성은 국가의 운명

[전병열 칼럼]공영방송의 공정성은 국가의 운명

공유

국가의 운명이 언론의 공정성에 좌우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방송은 국민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신문은 공익과 상업주의적 경쟁을 우선시하지만 방송은 공익 및 공적 책임을 최우선 사명으로 한다. 방송에도 분류가 있다. 국가에서 직접 재정 일체를 담당하고 관리·통제하는 국영방송과 민간 자본으로 운영하는 민영방송이다. 민영방송은 상업방송의 형태이며, 공익을 전제로 이익을 추구한다. 이와는 다른 형태인 공영방송이 있다. 공영방송은 공공이 소유하며, 정부나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한 정보와 공공 서비스 방송으로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 중 KBS와 EBS는 공영방송이며. SBS와 지역 민방은 민영방송이다. MBC의 경우 소유 및 운영 주체는 방송문화진흥회로 공적기관이지만, 주요 재원이 광고이고 방송의 목표가 시청자 만족에 있으므로 엄격히 말해 공영방송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공영방송의 범주로 분류한다.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70%,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사 개국 이래 지속돼 온 지상과제로 권력의 헤게모니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영방송이던 서울중앙방송사와 서울국제방송사, 서울텔레비전 방송사가 1968년 7월 중앙방송사로 통합하면서 단일 체제가 됐다. 그 후 1972년 12월 한국방송공사법이 공포되고 이듬해인 1973년 3월에 한국방송공사(KBS)로 개편된다. 정부가 전액 자본금을 출자해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고 임원들은 문화공보부 장관이 임명하는 체제다. 완전한 국영방송으로 정부에서 프로그램을 주도하게 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된다. 야당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1980년 집권한 신군부 정권은 방송 공영화를 명분으로 KBS와 종교방송을 제외하고 통폐합을 단행해 공영방송 체제를 도입한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공영방송이 되지 못하고 정권에 부역하는 홍보방송으로 전략한다. 선진국의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을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우리나라는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추진한 언론통폐합 조치의 일환으로 시도된 것이다. 그 이후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가 정착되자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하고 공익 및 사회적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권력자들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정권의 부역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을 경영진으로 앉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들을 통해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훼손시키면서 권력의 사욕을 채우고자 강행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영 방송의 공익 및 공적 책임이 새롭게 대두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조가 궐기했다. 그동안 정권 부역자 노릇을 해온 공영방송사의 경영진을 퇴진하라며 KBS와 MBC 노조가 지난 4일 총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참가 인원이 KBS 1,800여 명, MBC가 2,000여 명이다. 양대 공영방송 노조의 총 파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9년간 권력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영방송을 권력의 사유물로 만들어 여론을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해온 이들에 대한 퇴진 투쟁은 당연한 것이다.

MBC 사장은 왜곡 보도에 반발하는 기자 · PD 10명을 해고하고 71명을 징계, 187명을 부당 전보했다.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 감독에 나서 부당노동행위로 사장을 출석시키고자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검찰을 통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기까지 했다. 현직 방송국 사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초유의 사태다. KBS도 권력의 방송장악에 부역하며 정치적 편파 방송을 자행해온 사례가 수없이 열거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용산참사, 최순실 게이트 축소·왜곡 보도 등 KBS의 공정성을 훼손한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공영방송은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 신뢰가 당에 떨어진지 오래다”라며 방송 개혁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방송을 언론 적폐의 청산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줄 불편부당한 방송법 개정이 절실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개혁은 또 다른 적폐가 될 뿐이다. 장외 투쟁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주기 바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않은가.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