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도 기록해야겠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서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인연을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수년 만에 뵙는 것 같다. 진즉 찾아봬야 하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사실로 느껴진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만나 뵌 지가 오래다 보니 자연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억지로 변명하자면, 당장 뵙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을 테니까 뒤로 미뤄졌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기력이 약해지신 것 같네요.” “그래, 건강이 안 좋네.” “어디가 불편하세요?” 팔순이 넘은 분이라 예사롭게 물었었다. “췌장암이란다. 한 달 전에 듣고 항암치료 받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순간 췌장암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어머니께서 췌장암 선고를 받고 3개월 만에 돌아가신 터라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얼마 전에도 지인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술받고 완치됐다며 환하게 웃었지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었다.
아직은 불치의 병으로, 암 진단을 받으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그분은 담담하게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이 화목하게 잘 지내라” 마치 유언을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마지막 작별을 위한 준비로 보여 더욱 가슴이 아렸다. 죽기 전에 나를 한번 만나보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시외버스를 타고 오셨단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애정을 가지신 것 같아 죄스러운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좀 더 일찍 안부를 물었어야 했는데, 또 하나의 상처를 안게 됐다.
그동안 만남의 우선순위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결정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해야겠다. 바쁘니까 다음에 찾아봬야겠다고 미루다 엄청난 후회를 한 적 있어 다음부터는 만남을 절대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다음에, 다음에 하는 사이에 부고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중이란 소식을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내 삶을 핑계로 자위하기도 했지만,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게 그렇게 가슴에 맺혔었다.
어머니 사촌이신 외당숙과의 각별한 인연이 새삼 떠오른다. 어릴 적엔 외가에서 많이 지낸 덕분으로 외척들과는 아주 가깝게 지냈다. 사촌들과도 교류가 뜸해 얼굴조차 잊고 지낸다는 요즘 세대로서는 이해가 어렵겠지만, 당시는 도시에 사는 외가 친인척 자녀들이 대부분 방학 때는 우리 외갓집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각자 뿔뿔이 헤어져 소식이 뜸하지만, 그때는 방학이 기다려질 정도로 정이 두터웠었다.
외당숙과는 명절 때마다 찾아뵙고 특별히 인사를 드렸다. 워낙 인자하시고 나를 귀여워해 주셨기에 정이 많이 들었었다. 어머니의 각별한 당부이기도 했지만, 두툼한 용돈이 유혹(?)을 한 것이다. 그러다 상급 학교로 유학을 가고,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자주 뵙지를 못하고 마음에서 멀어졌다. 그나마 어머님 생전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 장례식에서 마지막 뵙고는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런데 근 10여 년 만에 죽음을 앞두고 불원천리 찾아오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지만, 소중한 인연을 멀리한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도 기록해야겠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서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인연을 기억해둬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속에는 그가 없어도 그의 마음에는 내가 꼭 간직하고 싶은 인연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앞으로 인연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다시는 죽음을 앞둔 만남이 되지 않도록 눈에서 멀어져도 마음만은 곁에 둬야한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