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열 칼럼 | 공천이 당선인데 선거는 왜 하는가
“돈으로 권력을 산 조선시대의 공명첩도 능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돈 없어도 참신한 인물, 능력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혁신돼야 하며 지역은 지역현안을 잘 아는 인물이 공천돼야 한다.”
“안녕하세요? 투표하려 가시나 보네요. 지지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 없어요. 어떤 사람이 나왔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왜 가세요? 건강도 안 좋아 보이시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xx 당 찍어야 된다고 해서 x번 찍어주려고요.” “그럼 출마한 후보 이름도 모르면서 무조건 x번만 찍어야겠네요. 그런데 교육감 후보는 정당 표시가 없는데 어떻게 해요?” 어르신들에게 7장이나 되는 투표용지를 선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투표장을 나서는 그들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찍으셨어요?” “몰라, 대충 보이는 대로 찍었어요.” 이번 지방 선거의 에피소드로 투표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 부부와의 대화 내용이다.
한때는 정치적인 야망도 있었지만, 당선이 곧 자금력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실망과 자괴감으로 꿈을 접었었다. 다른 분야로 일가를 이룰 수도 있지 않느냐고 자위하며 하는 일에 매진했지만, 여태까지 대망을 이루진 못했다. 진영 논리와 갈라치기, 헤게모니를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에 진저리 치면서 애써 정치에 무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어용 패널들의 정치쇼를 보고 환멸을 느낀 터라 더욱 정치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정파적인 언론의 무책임한 애완견 놀음에는 언론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다. 게다가 묻지 마 당선으로 정치판에서 벌이는 무소신의 거수기 역할이나 무능한 선량들을 마주할 때는 괜히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별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었다. 그동안 작은 목소리라도 울림을 기대하며 수백 편의 칼럼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울분을 삭이고자 갈긴 글이지만, 위정자들의 각성이나 혁신에 일조하고픈 속내도 있었다.
이번 지방 선거 역시 뻔한 결과로 나타났다. 소위 촛불 정부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보수와 진보의 극렬 지지층과 지방 색깔이 이번 선거에서 그대로 불거졌다. 묻지 마 싹쓸이 당선은 특정 정당과 지역이 독차지했다. 인물 중심의 선거가 아니라 정당 중심의 선거요, 지역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다. 이번 8대 선거 때 광역단체장의 경우 17곳 중 12곳이 국민의힘이 차지했으며, 5곳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는 국민의힘 145곳과 민주당 63곳이며, 지난 7대 선거 때 광역 14곳과 기초 151곳으로 민주당이 석권했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 역전으로 격세지감이다. 국민의힘이 완승을 거둔 것이다. 문제는 당의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이 당선됐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몇몇 광역단체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느 당이 승리했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무늬만 다당제인 대한민국이지만, 군소 정당 후보들을 대부분 전멸했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받지 못한 것 같다.
선거는 투표로 유권자의 대표자를 뽑는 일이다. 대표를 뽑아 정치를 대신하게 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다. 정당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나를 대신할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인식은 어떤가. 다수의 유권자들은 여당·야당, 진보·보수·중도 등 마치 정당이 정치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정치가 승자 독식의 오만과 독선으로 국민에 군림하고, 네 편 내 편으로 분열을 부추기면서 오직 표를 노리고 적군과 아군으로 갈라치기를 일삼았었다. 국민의 삶의 질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욕구 만족을 추구하고 상대편은 적군으로 몰아붙였다. 국민 통합이 오히려 불리하다고 판단한 편파적인 정치를 펼친 것이다.
후보들은 정당 공천이 우선이지 유권자의 지지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이며 능력은 별 볼일이 없다. 오직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 선량이나 당고위층에 연줄을 대기 위해 혈안이 된다. 공천이 당선이라면 선거는 왜 하는가. 돈으로 권력을 산 조선시대의 공명첩도 능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돈 없어도 참신한 인물, 능력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혁신돼야 하며 지역은 지역현안을 잘 아는 인물이 공천돼야 한다. 그나마 소신 있는 일부 최연소 선량이나 지방의원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전병열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