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수첩 l ‘아니면 말고’식 공약에 지지자들만 멍든다

취재수첩 l ‘아니면 말고’식 공약에 지지자들만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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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100여 일 앞두고 표 쟁탈전이 가관이다. 표가 있는 집단을 집중 공략하는가 하면, 네편 내편 갈라치기에도 실력을 발휘한다. 진영논리로 지지자를 결집시키려는 것이다.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들에게는 후보의 흠결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속담처럼 자기가 선호하는 후보는 뭘 해도 좋게 보일뿐이다. 설령 인지부조화가 생겨도 자기 합리화로 갈 때까지 가보자며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를 노리고 표 낚시를 하게 된다. 미끼를 잘 던지면 지지자가 걸려든다. 국민이 표로만 보일 때는 그 표를 낚아채기 위해서는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동원해 선동한다. 후보자들은 즉흥적으로 공약을 남발하기도 한다. 한번 걸리면 쉽게 탈출하지 못하고 극렬 지지자로 변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미 걸려든 지지자는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단단하게 뭉친다. 팬덤 현상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후보는 끊임없이 표를 노리고 취약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하게 된다. 약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후보를 지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갈라치기를 잘못하면 표 계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그럴 땐 다수의 원칙에 따라 공약을 취소하거나 잠정적으로 보류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토보유세 신설 공약에 대해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했다. 국토보유세는 토지 가격의 최대 1%까지 토지 보유자에게 걷겠다는 세금이다. 연간 30조 원에 달하는 이 세금은 부동산 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그는 대선 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도 3주 만에 철회했다. 여당은 올해 거둘 세금을 내년으로 미뤄 지원금 재원으로 삼자는 초유의 ‘납부 유예’ 전략까지 제시했으며, 기재부를 국정조사로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60~70%에 이르자 취소 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0월엔 한 지역에서 개업할 수 있는 음식점의 총량을 제한하는 ‘음식점 허가 총량제’와 ‘주 4일 근무제’도 꺼냈지만 비판이 커지자 “아이디어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월엔 기본소득에 대해 여야 모두에서 ‘현실성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기본소득이 1번 공약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에서는 “이 후보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것” “실용적 면모”라는 논평을 냈지만, 반대 여론이 높아져 표 계산에서 손실이 크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후보의 공약은 국가의 토대와 국민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정책 효과와 실현 가능성 등을 심사숙고해서 발표해야 하는 이유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그래도 끝까지 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득표를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철두철미한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의 한마디 약속에 유권자들의 표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계산으로 대중에 영합해 ‘애드립(ad-lib)’을 쏟아내선 안될 것이다.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