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 달이 어려우면 일주일이라도, 체류형 여행의 시대

한 달이 어려우면 일주일이라도, 체류형 여행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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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열풍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 들어 닥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울증 ‘코로나 블루’로 인해 긴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 달 살기는 직장인에게는 여전히 꿈의 영역이다. 이변이 있지 않는 한 회사 내에서 자유롭게 한 달씩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한 달 살기는 퇴사를 해야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여행지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함도 있는 법. 여행지에서 살아보는 특별함을 느끼고 싶지만 기간은 줄어든 형태가 바로 ‘일주일 살아보기’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미 2018년부터 여름 휴가시즌에 대한민국 구석구석 ‘일주일 살아보기’를 추진해왔다. 장기 체류형 국내여행 문화 향상을 위해 시작된 사업으로, 참여가 확정된 사람들에게는 총 6박7일의 숙박을 지원한다.

지난해의 경우 참가자들은 7월 29일~9월 1일 사이 6박 7일간 국내 5개 도시(경주, 영월, 충주, 보성, 남해) 여행계획을 세워 제출했고, 10개팀이 선정됐다. 공사는 관광벤처 숙박중계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 및 시골하루‘에서 추천하는 지역문화를 담은 독특한 숙소들을 참가자들에게 제공했고, 참가자들의 여유롭고 특별한 휴가 이야기는 대한민국구석구석 누리집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여행 강세를 타고, 각 지자체에서 일주일 살기를 홍보하고 나섰다.

강진군의 일주일 살기 이벤트인 ‘강진에서 맘 확 푸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으로 1명 기준 15만원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6박7일동안 푸소(농촌 숙박 및 체험·농촌 밥상체험·조석식 제공)을 체험하며, 청자컵 만들기, 음악창작소 무료 음반 제작 등을 비롯해 전기자전거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제천시가 추진한 ‘제천에서 일주일 살아보기’는 참여자 모집이 접수 이틀만에 총 52팀 118명이 신청하며 조기에 마감됐다. 선정된 참가자들은 제천에서 5일 이상 체류하며 방문, 체험수기 등을 온라인, SNS에 올리고 숙박비와 체험비 일부를 지원 받았다.

일주일 살기 여행지로는 한적한 시골마을도 좋지만, 도시의 인프라를 즐기며 해당 도시의 특색을 즐기는 것도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인기다.

20대 중반 직장인 이가영씨는 늦은 여름휴가 이야기를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이씨의 휴가지는 서울. 지방에 살고 있어 쉬는날을 이용해 잠깐잠깐 들르던 서울을 이번에는 7박 8일 일정으로 머무를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근무하던 직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무급휴가를 받은 것이 휴가를 떠나올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앞으로 수입이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절반을 코로나에 스트레스 받으며 버텨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딱히 정해놓은 일정은 없다.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무작정 골목을 산책하다 작은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둘러보는 등이 전부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떠나온 사람도 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준비중인 장다혜씨는 친구와 함께 광안리 인근의 숙소를 1주일간 빌려서 머물렀다. 코로나19로 공채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상반기 힘든 나날을 보냈던 장씨는 여행목적으로 “하반기를 더 열심히 준비하기 위한 숨고르기”라고 꼽았다. 광안리에 숙소를 잡은 건, 같이 학교를 다녔던 대학동기의 본가가 인근이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었던 바다를 실컷 보고 현지인인 친구의 힘을 빌려 1주일간 부산사람으로 살아보는 만족스러운 여름이었다는 소감이다.

이처럼 체류형 여행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자, 단순 관광형에 최적화되어있던 숙박업계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체류형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숙박형태는 에어비앤비(Airbnb)다. 호스트의 간섭 없이 취사가 가능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라이즈처럼 체류형 여행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에어비앤비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그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초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을 타인에게 유료로 빌려주는 공유 숙박 형태지만, 대다수 호스트들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단기 임대 형태로 내어놓는 형태다. 사진정보를 믿고 예약했지만 지나치게 미화된 사진이었다는 것을 체크인 후에 깨닫게 된다거나, 숙박도중 생기는 시설적인 문제를 즉각 해결받기 어렵다는 점 등 게스트들은 이를 감수하고 예약을 하고 있는 편이다. 기본적으로는 외국인 대상의 도시민박, 한옥체험, 농어촌민박이 아닌 경우 불법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위협하는 신개념 숙박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회사 ‘손더(Sonder Corp.)’라는 기업은 아파트를 통째로 빌려 호텔로 만들었다. 고객은 에어비앤비처럼 현지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에어비앤비와 달리 호텔처럼 24시간 고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텔에 숙박하면 호텔 내부에 마련된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숙소 인근의 피트니스 센터와 계약을 맺고 호텔에 머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한다. 건물 전체를 숙박업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오피스텔 한 호실, 한 층을 이용한 에어비앤비처럼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리스크도 적어지며, 한편으로는 미분양된 아파트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평이다.

쇠락한 원도심을 살리는 마을 호텔은 우리나라에서도 속속 찾아볼 수 있는 모델이다. 마을의 빈집 곳곳은 객실이 되고, 조식이나 석식 식권은 마을의 식당에서, 프론트로 이용되는 공간은 주민들과 여행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라운지가 된다. 일본 도쿄 야나카 지역에서 2015년 문을 연 하나레(Hanare)가 대표적인 해외의 성공 사례다. 인근 도쿄예대 학생들의 하숙집이었던 하기소(Hagiso)에서 체크인을 하고 동네 잡화점에서 기념품을 사고, 동네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즐기며, 동네 사찰에서 문화 체험까지 하며 마을이 하나의 관광서비스로 묶이게 된 것이다. 하기소를 이용한 여행자들은 현지인의 삶 깊숙하게 녹아드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평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쉼표이고 느낌표다. 어떤 것을 느끼든, 어떤 휴식을 하든 떠날 때마다 다르다는 매력이 있다. 체류형 여행이 떠오르는 것도 여행의 매력을 길고 깊게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