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인 20대 김재호씨는 물건을 사기 전에는 중고물품 직거래 앱을 먼저 찾아본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물건을 근처에 사는 누군가는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갖고 싶었던 기계식 키보드를 저렴하게 얻을 수 있었고, 반면 싫증난 보드게임은 기분 좋게 넘길 수 있었다.
저성장 시대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가 맞물리면서 불황형 사업으로 꼽히던 중고거래 시장이 급성장 물결을 타고 있다. 닐슨코리아클릭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중 중고거래 앱을 쓰는 순 이용자수는 지난 6월 기준 1090만 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 4050만명의 26.9%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고나라’를 비롯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쟁쟁한 거래 플랫폼이 가세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원조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는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로 시작해 손쉬운 접근성이 특징이다. 카페 회원수는 1천800만명, 모바일 앱 가입자 수는 440만명으로, 연간 약 890만건의 물품이 등록되고, 카페 총 거래액은 지난해 12월 기준 3조4천억원을 넘었다. 모바일 앱만 놓고 봤을 때는 타 경쟁사에 비해 뒤처지는 편이지만, 광범위한 카페 이용자를 바탕으로 광고사업이나 쇼핑몰 등을 통해 수익을 다각화하고 있다.
2010년 출시된 번개장터는 이용자들이 중고거래를 안심하고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한 플랫폼이다. 회원수 1천만명, 연간 거래액은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사용자의 80%는 MZ세대로 10대 이용자가 가장 많다.
지역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신드롬급이다. 2015년 7월 판교에서 지역 중고장터로 시작해, 1년 만에 중고앱 거래액 2위로 성장했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줄임말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중고 거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사기 피해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따뜻함을 거래하세요’라는 캐치프라이즈처럼, 당근마켓은 ‘매너온도’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거래 신뢰도를 수치화했다. 거래 후기나 응답속도 등에 따라 유저들의 매너온도는 변해, 스스로가 매너와 약속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AI를 활용해 사재기나 되팔기를 시도하는 부적절한 유저들도 걸러냈다. 동네 직거래라 배송비 부담이 없고, 사용방법이 직관적인 것도 장점이다.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당근했다”며 당근마켓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그 이유는 기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동네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숨은 맛집이나 명의가 있는 병원, 맛있는 반찬가게 등을 자신이 사는 지역의 다양한 소식과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 지역경제 활성화 플랫폼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지역을 기반 커뮤니티인 맘카페에서도 중고거래는 이뤄진다. 아이들 장난감, 육아용품 등이 주요 품목으로 요즘은 조금 색다른 거래가 등장하고 있다.
“킥보드랑 식빵 한 봉지 바꿔요”, “아기 영양제와 밤식빵 교환 원해요” 등 식빵이 중고거래 화폐처럼 등장한 것이다. 물건 원가는 수 만원대, 반면 식빵은 아무리 비싸도 5천원 이하다. 중고물품을 거래할 때 돈을 받지 않고 식빵과 거래하는 것이다. 이는 물건 나눔에 성의를 표시하고, 노쇼(no-show)를 방지하기도 한다.
이렇듯 최근 중고거래 시장이 활성화 된 것은 불황이나 저성장에 MZ세대의 ‘리셀(Re-sell)’문화 발달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 굿즈나 브랜드 한정상품, 콜라보레이션 제품 등 평소 잘 구하기 어렵거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상품을 사고팔면서 거래 자체를 문화로 즐기는 것이다.
비대면으로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자판기도 등장했다. 지난해 9월 설립된 스타트업 파라바라가 운영하는 ‘파라박스’다. 지하철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자판기보다 덩치는 두 배 정도 크지만, 밝은 조명 안에 칸칸이 가방이나 모자, 게임기 등이 진열되어 새 주인을 기다린다. 파라박스에서 중고 물품 판매를 원하는 이들은 자판기 안에 휴대전화 번호와 대략적인 상품설명, 받고 싶은 가격을 입력하고 상품을 넣어 두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온라인 중고 거래가 가지고 있던 사기의 위험, 직거래 과정에서의 범죄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용산 아이파크몰, 롯데마트 등 이용할 수 있는 장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중고시장은 중고차를 제외하고도 편의점과 비슷한 수준인 20조원대 규모로, 최근 10년에 5배나 커졌다. 한국보다 일찍 중고시장이 열린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보면 중고소비는 향후에도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2015년 1조 100억엔(약11조원)이었던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 1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기존 자동차 정도로 한정되었던 중고거래 품목이 의류와 잡화를 비롯한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된 결과다.
특히 벤처업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메르카리(mercari)’가 2013년 스마트폰 카메라로 물건을 찍어 바로 게시하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성장세에 불이 붙었다. 현재 메르카리 이용자는 월 1000만명에 이른다. 도쿄 신주쿠에는 메루카리를 체험할 수 있는 점포인 ‘메루카리 스테이션’이 오픈해 사용법을 익히고 즐기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중고시장은 신제품시장의 소비위축이라는 반발이 항상 따라다닌다. 하지만 물품이 풍족한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미니멀리즘 실천과 소비의 순환, 고령자의 경우 물품정리용으로도 인기다. 이용가치가 있되 갖고 싶은 건 중고로 사고, 불필요하면 되팔면 된다는 인식은 점점 커질 것이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시대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