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일상이 생활방역으로 전화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신록의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짙은 5월의 향기가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데 집콕’ 하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자리를 박차고 양산으로 달려보자.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 오봉산
양산 물금읍 물금리에 위치한 오봉산은 너무 아름다워 신라 말 고운 최치원선생이 머물며 시를 읊던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끝자락에 자리한 오봉산은 토곡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북은 토곡산, 남은 오봉산이고 그 사이에 낙동강에 연한 화제들판이 펼쳐진다. 오봉산의 남쪽은 양산천을 낀 물금들이고 그 건너편에 금정산이 솟아 있다. 물금읍과 원동면 경계를 이룬 오봉산은 말 그대로 5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능선이다. 530.8m의 제1봉이 낙동강 바로 동쪽에 자리 잡았고, 그 반대편 북동쪽 강서동 부근 화제고개 못 미쳐 제5봉(449.9m)이 있어 산줄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낮은 봉우리에서 마지막에 높은 봉우리를 이룬 셈이다. 이 산 마루턱에는 고운 최치원의 유상지인 임경대 유적이 있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바위봉우리로 낙동강과 그 건너편의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명소 중의 하나다. 낙동강과 인접한 오봉산은 등산코스 및 행글라이더 활강장이 있어 최근 들어 산악인들과 행글라이더 동호인들의 발길이 증가하고 있다.
▷ 배내골
아름다움과 긴 계곡으로 유명한 배내골은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 고봉들이 감싸고 있으며,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이천동(梨川洞), 우리 말로 배내골 이라한다. 이곳은 아직도 태고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봄이면 고로쇠 수액이 나는 것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통도사·내원사·홍룡폭포와 함께 1일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밀양댐건설로 인하여 배내골 전역이 상수도보호구역지정(2000.11)과 아울러 자연발생유원지 지정해제(2001.3)됨에 따라 물놀이, 취사행위는 일절 금지하고 있다.
▷ 내원사 계곡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위치한 내원사 계곡은 동부경남권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양산의 대표적 계곡이다.
천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내원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대둔사를 창건하면서 주위에 89개 암자를 두었다고 전해온다. 내원사는 그중 하나였으며 내원사지로 불리어 오다가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6.25때 불탄 것을 1958년 수옥비구니가 재건, 동국제일의 비구니 스님의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며 주변에 노전암, 성불암, 금봉암, 안적암, 조계암 등 많은 암자가 울창한 숲과 기암 절벽사이에 날아갈 듯 자리 잡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또한 내원사쪽과 노전암쪽 2개의 계곡은 예부터 소금강이라 할 정도로 깊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돌부리를 울리며 흐르는 그 광경은 인간의 온갖 번뇌와 망상을 한숨에 잊게 할 정도로 신비스럽다. 여름에는 피서객이 봄, 가을, 겨울에는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고 이곳 산에서 채취하는 도토리로 만든 묵은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건강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홍룡폭포
홍룡폭포는 양산시 상북면 홍룡로 372 일원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지산 도립공원 내의 원효산 골짜기의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홍룡폭포이다. 홍룡폭포는 보기드물게 상.중.하 3단 구조로 되어 있어 물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물보라가 사방으로 퍼진다. 시원한 물줄기와 더불어 주변 경관과 조화로운 이미지를 자아내며, 깎아 세운 듯한 바위와 떨어지는 물보라의 풍광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폭포 아래는 홍룡사 라는 아담한 사찰이 위치해 있다
▷ 통도사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에 위치한 통도사는 불보종찰로서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축산 속에 자리한 통도사는 천년 고찰로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 불보종찰로 꼽히는 명찰이다. 당나라에 수도를 떠난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신라 27대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이 절을 지었다고 하며,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400여 년 동안 법등이 꺼진 적이 없는 사찰로 대웅전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만 마련해 놓고 있으며 대신 대웅전의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 이 사찰의 특징이다. 또한, 통도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유형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43종)하고 있으며, 1999년 4월 15일 신축개관한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세계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불교 유물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한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이 있다. 특히, 절 주위 영축산기슭 울창한 숲 속에 20개 암자가 자리 잡고 통도사를 앞섶에 싸듯이 안고 병풍을 두른 듯한 연봉사이로 기암괴석의 절벽과 어우러진 영축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아 등산코스로도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 대운산자연휴양림
대운산자연휴양림은 양산시 삼호동에 위치한다. 탑골(일명 탑지골)은 대운산 서북쪽 자락에 위치하여 깊고, 웅장하면서도 물이 맑고 그 주변 분위기가 새와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깊은 계곡 산사의 분위기를 자아낼 만큼 고요한 곳이다. 이곳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은 숲속의 집, 산림휴양관, 회의실,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휴식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다.
▷ 천성산
천성산은 양산의 최고 명산으로 웅상(소주동, 평산동), 상북면, 하북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해발 922m이다.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 불리었으며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스님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고 하는데서 천성산이라 칭한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산홍을 이루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늪과 밀밭늪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천성산 산나물은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며,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이곳 정상은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나 전국에서 해돋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성산은 기존의 원효산(922.2m)과 천성산(817.9m)을 명칭 변경하여 천성산 제1봉과 제2봉으로 각각 부르게 되었고, 예전에는 원적산이라고도 불리었다.
또한 천성산은 양산시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은 정족산 줄기의 지맥에 해당하는데 이 산줄기에 따라 양산시가 동·서로 갈리며, 회야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 천태산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자리한 천태산은 양산의 3대 명산 중 하나이다. 천태산은 예부터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남서쪽으로 ‘낙동강’, 북서쪽으로 최근 유원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삼랑진 양수발전소 댐’ 그리고 동북쪽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배내골’이 연계되어 부산. 울산. 마산 등지에서 등산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특히, 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는 탄성을 자아내도 모자랄 만큼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하여 사은제의 팔경시중 천태낙조의 첫시구에 ″소라계곡 햇빛 머금고 힘써 반만 벌렸는데 마고선녀 머리감으러 구름타고 내려오네″란 글귀로 전래되어 내려올 만큼 낙동강의 낙조는 유명하다.
또한 남쪽에 위치한 천태각(천태정사)에서 용연폭포에 이르는 30여리의 긴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맑고 깨끗한 자연경관을자랑하고 있다. 또 하나 볼거리로 산 정상에 이르기 전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그곳 골짜기를 오르면 기암이 절벽을 이루고 정상에 오르면 넓은 바위가 평지처럼 놓여있어 마치 하늘밑 구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기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위경관에 취하다 보면 도원경(桃源境)에서 신선들과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현세의 시름을 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낙동강변에 작원관이 있는데 원래는 양산이었으나 지금은 밀양시 삼랑진이다. 임진왜란 때 박진 밀양부사가 여기를 최후의 교두보로 하고 왜적에 대항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던 곳이다. 이곳은 관(국경이나 중요한 지역에 두어 지나는 사람과 물건 등을 조사하게 하던곳)이기 때문에 서울로 가는 행객들이 여기서 검문을 받기도 하고 쉬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물금에서 작원관까지 험준한 산길을 갈 수 없어 잔교를 메고 그 위를 걸어가서 작원관에서 일박하고 서울로 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