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조의 전설을 되새기며, 더 이상 국민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지 말고 공존의 정치를 하라. 국민은 또다시 경자년 새해 새 희망을 품으려 한다.”
‘공명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새로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설산에 살았었다는 공명조는 한 몸이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많아 자주 다투게 된다. 심할 경우는 마치 원수같이 죽기 살기로 싸웠다.
어느 날 오후 A머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필 그때 깨어난 B머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맛있는 먹이
를 발견한다. 마음 착한 B는 잠자고 있는 A를 깨워서 같이 먹을까 하고 고민한다. 하지만 성격이 까칠한A의 잠을 깨우면 오히려 단잠을 깨웠다고 화를 낼 것 같은 생각에 고민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배부른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그 맛있는 먹이를 혼자 먹게 된다. 몸뚱이가 하나니까 음식을 누가 먹던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잠에 빠졌던 A는 갑자기 배가 불러오자 낮잠에서 깨어난다. B가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것
을 알고 크게 화를 낸다. A는 의리도 없는 B가 너무 괘씸해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B는 미안한 생각에 사과도 하고 용서를 구하며 전후 사정을 설명도 했다. 그러나 A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두 머리는 연일 다투며 감정 대립이 극을 달리고 있던 어느 날 B가 큰 나뭇가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
다. 그때 깨어있던 A는 나무 둥치에 나있는 독버섯을 발견한다. A는 B를 혼내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그 독버섯을 먹어버린다. 그러자 그 독버섯의 독이 온몸에 퍼지게 되면서 B머리뿐만 아니라 A머리도 죽고 말았다.
공존(共存)의 길을 약속했지만, 보수와 진보의 이기적 갈등과 정치적 계산으로 자칫 공멸(共滅))의 길
을 가는 작금의 정치판을 되짚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격해지면 자신의 처지는 생각지 않고 적대적 감정만 표출하게 된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한 대립을 계속하다 보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가 존립까지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지난 15일 교수신문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9일까지‘올해의 사자성어’를 놓고 교수 1천46명을 대상으로 이메일과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많은 교수들이 이 성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공명지조를 추천한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우리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 증세를 겪고 있다. 양극단의 진영을 토대로 다들 이분법적 원리주의자, 맹목적 이념 기계가 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리당략과 사심이 앞서면 올바른 정치가 될 수 없다.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은 기댈 곳
을 잃고‘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이란 말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809년을 전후해 호남에 엄청난 가뭄이 닥쳤다. 100년 동안 없었던‘흉황(凶荒)’이었다고 한다. 전지(田地)의 80%가 황폐해졌고 백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풀뿌리를 캐 먹으며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다 종내는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 결국은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길바닥에는 쓰러져 죽은 시체가 잇따르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백성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졌는데도 위정자들은 자기 잇속만 채우려 정쟁만 일삼았다. 결국 국가 시스템은 붕괴됐고 수탈과 착취가 극에 달하자 백성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한 취업포털의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각자도생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고
한다. 공생이니, 연대니, 공동체니 하는 가치가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는 세태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금돼지의 기해년(己亥年)이 저물고 있다. 새해 벽두에 걸었던 희망도 함께 저물어 간다. 그 어느 해
보다 분노와 실망, 후회뿐만 아니라 배신감마저 들었던 한 해였다. 파렴치한 정치꾼들로 인해 국민은 양분되고,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로 정치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정치판은 이 시간에도 권력 유지와 쟁취에 매몰돼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공명조의 전설을 되새기며, 더 이상 국민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지 말고 공존의 정치를 하라. 한 국가
에서 두 머리가 싸우면 공존보다 공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국민은 또다시 경자년(庚子年) 새해 새 희망을 품으려 한다.
글 전병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