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논리와 가짜 뉴스로 여론을 호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정치가 실종된 정치 집단은 오합지졸의 패거리 집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어디 가시나요?” “광화문에 갑니다.”
“무슨 일로 가시는 데요?” “시위 보러 갑니다.”
“구경하려 가시나요?” “그것도 그렇고 지인이 시위대에 참가해 달라고 요청이 와서 가 봅니다.”
속된 말로 ‘따라 장가는 사람’이다. 특별히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따라가다 보면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적으로 어느 한 편을 든다면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말은 처음에 부정되고, 그다음은 의심되지만 결국 믿게 된다.” 독일 나치 정권의 선동가 ‘파울 괴벨스’의 어록에 나온 말이다. 선동적 메시지가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서 이 같은 경우 충동적으로 동조하고 결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위 현장에는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군중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시위대의 선동 정치에 따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국가가 양분되는 양상이다. ‘검찰개혁’과 ‘조국 사퇴’를 촉구하는 집단이 세몰이를 하며, 마치 자파 총동원령을 내린 것 같다. 어느 쪽이 우세한가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당리당략적인 셈법으로 우세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침묵하는 국민도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결심을 하거나 아예 포기할지도 모른다. 이성적인 시민들은 외부적 요인보다 내부적 갈등에서 고민할 것이다. 어차피 어느 한편에 서야 한다면 감성적인 느낌이 좌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들의 현명한 판단은 국가의 미래를 견인하고 현재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갈등(葛藤)의 한자를 보면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가 얽히듯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상호 상치되는 견해, 이해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충돌, 또는 정신적인 세계 내부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지닌 힘들이 충돌하는 상태를 갈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 또는 집단의 내부나 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레빈(Kurt Zadek Lewin)은 개인의 욕구나 목표에 접근하려는 경향과 회피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며, 이러한 접근 경향과 회피 경향의 충돌에 의해 갈등이 발생한다고 했다. 갈등은 집단과 집단 간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낙인과 집단 사고가 이러한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정치 집단의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갈등 이론(realistic conflict theory)에 의하면 제한된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하려는 시도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돈, 명예, 권력, 사회적 지위와 같이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소유하려는 경쟁이 갈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 이론(relative depriv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만족 또는 불만족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이 받아야 마땅한 정도와 실제 가진 것 간의 괴리로 집단 간의 갈등이 유발된다. 집단 간 갈등은 갈등이 지속됨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띤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을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이 속한 또는 자신과 가까운 집단을 내집단으로 규정하는 반면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그 밖의 집단은 외집단으로 규정한 후, 자신이 속한 내집단에 더 호의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편향적인 태도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해법이지만, 입장을 바꿔보기는커녕 자신의 목소리만 키운다.
작금의 정치권을 보라. 내 편이니까 무조건 동조하고 내 줄에 서라고 회유하며 적군과 아군으로 파당을 만들어 갈등을 고조 시키고 있지 않은가. 억지 논리와 가짜 뉴스로 여론을 호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정치가 실종된 정치 집단은 오합지졸의 패거리 집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고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적인 이전투구(泥田鬪狗)만 일삼고 있다.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들이 정의로운 국가로 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