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2018년 흥행작 3위, 음악영화로는 역대 흥행 신기록을 세운 최고의 화제작. 바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이다. 영화에 나오는 락밴드 ‘퀸’의 활동 시기가 1970~80년대이다. 퀸의 전성기를 함께한 40~50대층에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흥행은 40~50대뿐 아니라 20~30대 등 퀸을 잘 모를 것 같은 젊은 연령층이 주축이 됐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령별 예매분포에서 20대와 30대의 비중이 60%가 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서 보여준 ‘뉴트로’ 열풍도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한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기존 레트로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지난날 향수에 호소했다면 뉴트로는 과거를 모르는 10~30대가 옛것에서 찾은 신선함을 통해 나타난다. 식음료 업계에서는 20~30년 전의 패키지 디자인을 다시 살려서 제품을 판매하거나, 아예 레트로 풍의 상품을 새롭게 선보이는 식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이렇듯 밀레니얼 세대는 영화를 넘어 패션, 식음료, 여행까지 각종 산업에서 독자적인 소비 형태를 구성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경험’의 가치를 찾는 밀레니얼 세대
2018년 ‘소확행’, ‘워라밸’ 등을 예측하며 이제는 한 해를 시작하기 전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트렌드 전망서들은 2019년 공통적으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가 급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미국 퓨리서치 기준)를 말한다. 새로운 밀레니엄(2000년) 이후 성인이 돼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는 뜻에서 ‘새천년 세대’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만 1098만 명으로 무려 21.2%가 밀레니얼 세대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중심은 ‘나 자신’이다. 이들은 돈을 쓸 때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보다 ‘나에게 얼마나 큰 만족을 줄 수 있는가’를 잣대로 삼는다. 그들은 경험에서 오는 행복을 더 중요시한다.
미국의 한 기관에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77%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기억은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답했다. ‘소유’보다는 ‘경험’을 사는 사람들. 이들이 말하는 경험의 중심에는 현재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여행’이 있다.
그들의 여행은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며, 모험심이 넘친다. 파리의 에펠탑과 같이 흔한 관광지는 뒷전이다. 흔치 않은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는 것이 청년층 여행의 트렌드가 됐다.
이를 위해 밀레니얼 세대는 쇼핑 지출을 줄이는 대신, 더 좋은 식사, 관광, 여가 활동 등에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소비 습관은 라이프 스타일을 좀 더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민지(27) 씨는 돈을 모아 명품 가방을 사는 대신 1년에 한 번 여행을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 때문에 작년까지만 해도 돈을 모으면 명품을 사고 치장하는 거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2019년 목표는 남들을 위해 구매하는 제품이 아닌 나를 위한 선물로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그것이 살면서 나에게 더 많은 신선함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새해 다짐을 말했다.
이렇듯 여행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깊숙이 자리 잡게 됐다. 온라인 호텔 예약 사이트 호텔스닷컴은 지난해 11월 한국 밀레니얼 세대의 여행, 숙박에 대한 흥미로운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담은 자체 설문조사 데이터를 발표했다. 한국 밀레니얼 세대에게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해외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날 발표된 호텔스닷컴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다. 응답자들의 78%가 ‘1년에 최소 1회 이상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답했는데 이는 1년에 최소 1회 이상 국내여행을 떠난다고 답한 비중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체관광이나 호화 크루즈 여행 등을 선호했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본인의 취향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개별 자유여행을 선호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스마트폰 사용이 능숙해서다. 인터넷에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활용해 그들만의 여행 계획을 짠다. 많은 관광 업계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 스타, 파워 블로거 등 소위 ‘핵심 오피니언 리더(Key Opinion Leaders, KOL)’를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중국의 젊은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회사는 중국 온라인상에서 유명한 여행 전문 KOL과 협업해 현지 숙소에 거주하며 외국 생활을 경험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 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에이비앤비여행경험 관련 글이 1300만 조회 수를 달성했고, 캠페인 당일에만 위챗 멘션 200만 회를 기록했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에어비앤비는 최근 중국 베이징 사업부 인력을 기존의 4배가 넘는 100여 명으로 확대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밀레니얼 세대가 여행을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행사들도 이런 변화를 적극 반영해 홍보 전략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2019년에는 이와 관련된 여행 상품도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위의 조사처럼 주위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간다고 해서 지금 당장 모으는 적금을 깨고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치장하는 데 드는 비용을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남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보이는 시선도 중요하다. 다만 한 번쯤 이러한 주위의 시선을 버리고 나 자신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멋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세워보는 건 어떨까.
황정윤 기자 hj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