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잊히는 즐거움, 온전한 자유 시간

잊히는 즐거움, 온전한 자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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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가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개를 아래로 숙여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해외나 국내 여행을 떠나도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다. 사람들은 집을 떠나는 순간 휴대폰이 아주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휴가지에서조차 휴대폰으로 한 시간씩 화면을 스크롤하며 SNS를 한다면 휴가를 떠나는 이유가 있을까.

휴가철 풍경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인화한 사진을 주위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최근에는 휴가를 떠난 많은 사람이 휴가지에서의 순간을 소셜미디어에 수시로 올리는 통에 상대가 어디로 휴가를 가서 무엇을 했는지 훤하게 알고 있는 세상이다.

여행은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떠나는 일이었다. 평소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는 일터와 가정에서 가족이나 동료들과 맺어온 관계를 떠나,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공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행위였다. 스마트폰 시대는 휴가와 여행에 담겨 있던 ‘일상적 시공간으로부터 탈출’이라는 의미도 바꾸고 있다. 일상의 공간을 떠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연결된 상태라는 점이 휴가가 주던 비일상적 시공간으로의 이동이라는 의미를 옅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여행을 가도 잘 쉬었다는 느낌보다 예쁜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SNS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층이 고립된 여행, 아무도 내가 어디 갔는지를 모르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아무도 날 찾지 마세요

세계적인 시장 조사 기업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은 지난 11월 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박람회인 세계관광박람회(World Travel Market, WTM)에서 세계 여행 시장을 이끌 새로운 트렌드와 미래 예측을 발표했다.

유로모니터는 새로운 여행 신조어로 ‘조모’(JOMO, The Joy of Missing Out)를 제시했다. ‘조모’는 잊히는 것의 두려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일상을 벗어나 진정성, 프라이버시, 직접 대면하며 느끼는 생생한 경험을 추구하는, 일명 ‘플러그를 뺀 상태’를 추구하는 여행 트렌드다.

영국의 고급 맞춤형 전문 여행사인 ‘블랙토마토’가 ‘조모’ 트렌드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로 언급된다. ‘블랙토마토’는 사전 정보와 관련해서는 공항 출국 시각만 공개할 뿐 나머지 일정은 알려주지 않는다. 주요 여행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정글과 몽골 사막 등 오지로 한정하며,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여행의 시작부터 일상과의 단절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새로운 여행 신조어 ‘조모’가 나온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의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포모증후군은 조모와 반대로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는 것 같은 고립 공포감을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나만 최신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의미한다. 이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중독 문제의 심리적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포모증후군의 주요 증상으로는 SNS 친구들이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반대로 자신이 먼저 기발한 정보를 공유해야 마음이 편안한 심리, 유명인이나 인기인과는 무조건 친구를 맺고 소식을 공유하려는 행동. 휴식을 취할 때 SNS를 강박적으로 하고 좋은 것을 보거나 먹을 때는 반드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동 등이 있다.

직장인 이혜진(26) 씨는 지난 5월 베트남 다낭으로 친구와 여행을 갔다. 친구와의 여행에서 4박 동안 스마트폰과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친구가 리조트에서 수영할 때도 음식을 먹을 때도 관광을 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사진 업로드만 계속했다”며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는 사진을 골라줄 때뿐이었다”고 여행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그 이후의 여행은 SNS에 갇힌 여행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싶어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됐다”며 “휴대폰과 멀리하니 진짜 그곳의 전경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SNS를 사용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볍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다. 전통적으로 사람 간 관계를 중요시하고 공동체 생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포모증후군이라는 사회 병리적 현상에 더 취약한 사회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여행을 떠났을 때 예쁜 사진을 남기고 SNS에 내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여행이 가지는 본질이 흐려지지 않게 직접 대면하며 느끼고 생생한 경험을 추구하는 ‘조모’를 좀 더 만끽하는 건 어떨까.

황정윤 기자 hj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