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근황과 재결성한 무대가 공중파를 탔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사라진 가수를 찾아나서는 전문 프로그램 JTBC ‘슈가맨’은 두 번의 시즌을 맞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같은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콘서트와 팬미팅 및 방송 등을 통해 오랜 팬들의 갈증에 단비를 뿌렸다.
하지만 이들의 귀환이 좋은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멤버들의 불성실한 태도와 문제 상황 야기, 멤버들 간의 불화 등으로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 1세대 아이돌의 팬들은 이제 경제력이 보장된 3040세대에 포집돼 있다. 각박한 일상으로 인해 문화생활을 멀리하던 팬들을 불러 모았지만, 다시금 문화생활에서 등을 돌리게 할 요인도 다분하다. 주로 20대 관객 중심의 공연업계에 3040세대가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문화생활 향유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면 관련 업계는 어떤 방안과 자성이 필요할지 짚어봤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오빠들’이 돌아왔다
올해 초 설 명절을 앞두고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코너 ‘토토가’에 1세대 아이돌의 대표 격인 H.O.T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그동안 루머와 잡음이 많았던 이들의 무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긴장감 속에 결국 열렸다. 마침 공연날짜가 설 연휴와 겹쳐 성인이 되고 주부가 된 팬들이 ‘전 부치고 공연 간다’며 맘 카페에 공유를 하는 등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두 해 전에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젝스키스의 무대가 펼쳐진 바 있다. 이때 팬들은 과거 사용하던 응원용품과 젝스키스를 상징하는 노란색 의상과 소품을 준비해 감동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다시금 결집된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1세대 아이돌인 H.O.T와 젝스키스는 단독 콘서트를 열고 방송출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약 17년의 세월이 흘러 멤버들은 나이가 들고 유부남이 됐지만 과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3040세대가 된 팬들은 소녀감성으로 돌아가 그 시절 ‘오빠들’을 힘껏 응원했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 결국 문제는 ‘돈’
과거 좋아하던 가수들을 소환하고 함께 추억을 만끽할 수 있는 데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1세대 아이돌의 귀환은 잡음의 연속이었다.
일단 먼저 활동을 시작한 젝스키스의 경우 메인보컬인 강성훈의 개인 팬클럽 ‘후니월드’를 통한 횡령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017년 4월 ‘후니월드’ 측은 젝스키스 20주년 영상회를 열고 참가비와 별개로 기부금을 받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영상회가 끝난 후 금액 사용 내역이 명시된 영수증이 아닌 견적서를 공개하며 금액이 남지 않아 기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견적서에는 영화관 3시간 대관료가 6천만 원으로 책정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이 적혀있었다. 이에 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증거를 모아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강성훈은 횡령 의혹 외에도 팬 기만,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 전 매니저 협박 및 폭행 시비 등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올해 초 젝스키스의 멤버인 이재진이 한정으로 발매한 드로잉북 구매자 중 10명을 대상으로 비공개 팬미팅이 열렸다. 이날 1차는 이재진이 계산했지만 이후 매니저가 2차, 3차의 비용을 팬들에게 더치페이 요구를 했다. 하지만 팬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드로잉북 구매에 거액을 쓴 팬들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더치페이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이재진은 팬에게 받은 선물을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전달했다는 의혹도 받은 바 있다.
H.O.T 역시 지난해 5월, 멤버 문희준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 결혼을 앞둔 팬 기만, 무성의한 공연, 굿즈 판매와 탈세 의혹이 있었다. 개인 팬클럽 ‘주니스트’에서 문희준의 생일 선물로 고가의 외제차, 가구 등을 선물했으나 구입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 굿즈 판매가 현금결제와 무통장입금으로만 진행됐으나 카드결제와 현금영수증 발행은 거절됐다는 점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팬들은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에 ‘문희준 지지 철회 성명서’를 올렸다.
팬들 두 번 울리는 ‘암표’와 ‘상표권’ 논쟁… 업계 각성 필요
지난 10월 13, 14일간 열린 H.O.T 단독 콘서트 역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17년 만에 열린 단독 콘서트 티켓은 8만여 좌석이 티켓 오픈 후 몇 분 만에 매진됐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된 팬들 사이에 인기가 가장 많았던 테이블석은 전화로만 예매할 수 있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좌석인 만큼 금세 암표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테이블석 티켓은 중고 티켓 거래 사이트 티켓베이에서 189만 원까지 올라왔다. 해당 콘서트의 티켓 최고가격인 14만3천원의 1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암표는 H.O.T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행법상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암표는 처벌 근거가 없어 인기 공연마다 발생하는 문제다. 고가에 암표가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에 H.O.T 공연 주최사인 솔트이노베이션은 “매크로 등을 이용한 불법 예매를 비롯한 암표거래에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H.O.T라는 명칭과 공식로고에 상표권을 출원해 보유하고 있던 김 씨가 콘서트 개최 시 로열티를 요구하는 바람에 행사 진행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공연 주최사는 ‘클럽 H.O.T’ 우비 및 공식 굿즈를 제작, 판매할 계획이었지만 상표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암초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오빠들’이지만 이후 보여주는 모습과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1세대 아이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한 1세대 아이돌이 활동하던 당시 10대였던 팬들은 이제 경제력을 갖춘 3040세대가 됐다. 관련 업계 및 이해관계자들이 팬들의 지갑만을 노리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거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저녁 9시면 공식처럼 뉴스를 틀고,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는 게 전부였던 세대는 노년이 되고도 여가생활이 다채롭지 못하다. 반면 지금의 3040세대는 자유롭게 문화생활을 즐기고 다채로운 취미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연업계의 각성과 팬들의 사랑에 힘입어 재기한 가수들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