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관광객 NO! 제주도 투어리즘 포비아 확산

관광객 NO! 제주도 투어리즘 포비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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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좌읍에 거주하는 김 씨 할머니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 물질을 나간다. 할머니가 잠을 못자는 이유는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 때문이 아니다. 인근에 들어선 술집을 찾은 관광객들이 밤새 술을 마시면서 떠들기 때문이다. 시끄럽다고 항의도 해보고 신고도 해보지만 속수무책. 해가 뜬 뒤에 문밖을 나서면 바닷가는 쓰레기 천국이다.

제주도 관광이 핫 해질수록 마을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작은 해변 월정리에는 술집, 카페, 펜션, 게스트하우스가 빼곡하게 들어찼고, 섬 반대편 애월도 예외는 아니다. 해변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해녀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농사짓고 물질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소음은 돌담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월정리 해변 쪽 건물의 공시지가는 1㎡에 90만 원. 3년 전보다 10배 이상 폭등한 수치다. 문제는 그 땅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우리끼리 조용하게 살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관광객들의 차가 좁은 골목으로 몰려오고, 그들이 버린 음료수병, 캔, 담배꽁초 등이 넘쳐난다. 월정리 주민들은 “월정리는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만 같다”고 토로했다. 카페와 펜션이 빼곡하게 들어찼지만, 월정리 인구는 700명 남짓으로 5년 전 그대로다. 월정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른 마을에서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생활의 불편이란 불편은 다 겪지만, 돈은 결국 외지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 격이다. 마을 주민과 장사하는 사람이 분리돼 있으니 공동체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10년 만에 1천만 명이 늘어, 2016년에는 1,545만 명을 기록했다. 면적이 제주의 1.5배, 인구는 2배인 하와이는 제주보다 훨씬 적은 868만 명(2015년 기준)이다. 이미 하와이보다 두 배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데, 제2공항이 들어서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제주는 관광객을 수용하는 데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주시 봉개동의 쓰레기 소각장은 2016년 5월에 사용이 종료됐어야 했지만, 2018년 5월까지 연장해서 가동하고 있다. 관광객과 주민이 급증하고 있지만, 행정이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해 쓰레기가 처치곤란 상태인 것이다. 실제로 봉개 소각장은 하얀 비닐로 포장된 무게 1t의 압축쓰레기 뭉치 5만 여개가 쌓여 있어, 마치 산성처럼 보일 정도다. 압축쓰레기는 t당 12만 원씩 예산을 들여 육지의 시멘트 공장에 연료용으로 보내진다. 현재 쌓인 쓰레기를 없애는 데만도 60억 원이 소요된다.

매립용 쓰레기는 올해 말 묻을 공간이 동난다. 새 매립장이 내년 2월부터 가동될 예정이지만, 관광객과 주민이 급증하는데 소각장 증설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하수 역시 허용치를 초과해 청정 바다로 오염물질이 쏟아지는 날이 많다. 사람이 배출하는 하수도 문제지만 1,500만 관광객이 먹을 돼지를 공급하기 위한 축사의 폐수도 위협적이다.

이서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객원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제주언론학회에서 발표한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을 위한 언론보도 방향 연구’에서 “제주 곳곳에서 오버투어리즘의 전조 현상이 보인다”면서 “제주의 관광산업이 진정 제주 지역 주민들의 삶에 기여하고 있는지, 더 본질적인 관점에서 제주 관광을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말 제주관광공사에서 발표한 ‘제주관광 수용력 연구’는 제주가 물리적·심리적·경제적으로 관광객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 처음 조사한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내 제주 관광의 물리적·경제적 수용력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제주도는 환경보전기금 도입과 관광지 입장료 인상 및 수용력 한정 등 입도객 규모를 제한하는데 치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도민 불편 해소를 위한 노력이나 마을 정체성 훼손 등에 대한 관리 흔적은 없는 실정이다.

관광산업조수입이 지난해 5억 7,000억 원을 달성했지만 도민들의 체감도는 낮다. 관광 시장은 날로 비대해지는 반면 부가가치가 감소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2일 발표한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제주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2010년 이후 관광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관광업종 종사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등 부가가치는 2014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2010년 1인당 부가가치는 10만 1,000원에서 2013년 12만 2,000원으로 올랐지만, 2017년 11만 2,000원으로 다시 떨어졌다. 이는 온라인 시장 할인판매 급증, 동종업계 과당경쟁 심화로 낮아진 마진율, 모객을 위한 송객수수료 등 인센티브 강화 등으로 부가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관광은 원주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이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주 교동 한옥마을, 서울 북촌 한옥마을, 여수와 더불어 베네치아와 마요르카 등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관광지에 몰려들면서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 하며, 원주민들이 이를 못 견디고 이사를 가는 것을 ‘투어’와 ‘젠트리피케이션’을 합성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 한다.

한옥마을에서는 사생활 침해를 못 견딘 원주민들이 이사를 떠났다. 인구 5만에 불과한 베네치아는 연간 2,500만 관광객에 시달린다. 크루즈선을 타고 왔다가 서너 시간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들 때문에 전통 상점과 공방이 도심에서 밀려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도심에서 숙박업소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관광버스 도심지 통행을 제한하고, 마요르카의 항구도시 팔마 시는 주택을 주민이 아닌 관광객에게 임대하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 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주민들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 자전거 거치대를 관광객들이 차지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관광객용 자전거를 파손했다. 이들은 바르셀로나에서 관광버스의 타이어를 찢고 앞 유리에 “관광이 지역을 죽인다”는 구호를 썼다. 올해 들어서면 여러 호텔이 반(反)관광 낙서 세례를 받았고, 도시 곳곳은 ‘관광객은 집으로 돌아가라’ 등의 구호로 도배됐다.

이 같은 투어리즘 포비아가 등장한 이유를 관광학계는 관광객 증가와 여행지 편중이라고 보고 있다. 특정 여행지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쏠리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굴뚝 없는 4차 산업으로 각광받던 관광산업. 양적 성장을 위한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가 투어리즘 포비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공정한 관광을 해야 한다. 물질 나가는 제주 할망이 밤잠을 잘 수 있도록, 한옥마을의 주민들이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시킬 수 있도록. 지역 주민, 관광객, 관광 사업자, 정책 당국이 모두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정책 연구가 필요한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