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는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일관될 수 있다. 경기지표가 물가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의 실생활이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가 정부 핵심 어젠다로 부각되는 동안 국가 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서민들의 살림은 거덜 나기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각종 경기 지표는 성장세를 나타내고 관련 부처와 기관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체감경기는 최악의 상태로 도처에서 서민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친다. 경기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는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일관될 수 있다. 경기지표가 물가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의 실생활이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6개월 만에 반등했음에도 국민들 체감경기는 여전히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소득뿐 아니라 소비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나는 모양새여서 경기지표가 실제 경기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8년 5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 107.9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이달에 0.8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7개의 소비자동향지수(CSI) 항목 중 현재 생활형편, 가계수입 전망 등 6개 주요 지수를 표준화한 것이다. 지수가 기준치 100 이상이면 경제 상황 인식이 긍정적이며, 이하이면 부정적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통계청의 ‘2018년 가계동향조사’에 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근로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13.3% 줄었고 사업소득은 26.0% 급락했다. 다만 정부나 기족 등으로부터 보조받는 이전소득은 21.6% 급증했다. 결국 하위 20%에 속하는 저소득층은 근로나 사업을 통한 소득은 줄고 보조받은 소득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의하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상승했다. 농축수산물이 2.7%, 공업제품 1.6%, 서비스가 1.7% 올랐고 공공요금인 전기·수도·가스만 3.3% 내렸다. 특히 채소류 가격은 13.5% 올라 지난해 8월 22.5% 상승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쌀도 29.5% 상승하면서 지난 3월 이후 3개월째 두 자릿수 상승 추세를 이어갔고, 석유류 가격도 국제유가상승의 영향으로 6.0% 오르면서 전체 물가를 0.27% 포인트 끌어올렸다. 휘발유의 물가지수는 104.35로, 2015년 7월 104.44를 기록한 후 최근 34개월 사이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유의 물가지수는 105.67로, 2014년 12월 물가지수 113.609까지 오른 후 최근 41개월 사이에 가장 높았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4% 상승했다. 특히 쌀과 무, 감자 등 가격이 1년 사이에 두 자릿수 인상률을 보이며 밥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저소득 봉급생활자들은 점심 밥값조차 부담으로 느껴진다.
최저 임금 인상의 여파는 희비가 엇갈린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일용직과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가족들이 총동원돼 일손을 돕는다고 한다. 음식업의 경우 오르는 물가를 감당 못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봉급이 오른 근로자들이 휴일을 찾아 국내외로 즐겁게 여행을 떠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4월 항공여객은 지난해 4월보다 12.5% 증가한 977여만 명이다. 국제선 여객은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 상승 등으로 전년 동월보다 18.4% 늘어난 689만 명을 기록했다. 국내선 여객은 288명으로 전년 보다 0.5% 증가했다. 고소득자의 해외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월 실업률은 4.5%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매월 20만∼30만 명씩 증가하던 취업자 수가 올 2월 이후 3개월 연속 1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어느 부분에서도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소비·투자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을 낙관하는 모습이다.
이젠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지방선거에 국정의 성패를 걸었다면 이제 그 정책 역량을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 노인 빈곤층 등 사각지대의 소득증대에 쏟아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위기에 처한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아우성을 외면하지 말고 시급히 그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